세계적 성웅 김대건전을 쓰던 인사 말씀에도 솔직이 말하였지만, 천학비재(淺學菲才)로써 감히 붓을 들어, 그 어른의 빛난 일생을 엮던 그 순간부터, 그 졸고(拙稿)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늘 외람하고도 송구한 생각이 마음에 가득할 뿐이었는데 막상 책이 나와서 여러 스승들 손에 들리게 되면서부터 과남한 찬사들을 보내주시고, 분에 넘치는 서평을 써주시는 데는 더욱 송구하고 외람할 뿐이다.
실은 반만년 면면(綿綿)히 뻗어난 우리 문화민족 三천만의 얼과 넋이 한데 뭉쳐, 그 어른의 전기를 엮고, 수놓아 꾸며야 할 것이었다. 그러지 못한다면 사계(斯界)의 고명한 전문대가(專門大家)들이 벌써 이 전기를 마련해서, 우리에게는 물론이오, 전세계에 소개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른 가신지도 어언 백십수년이며 세계적 성웅으로 추존되시어, 이 나라 이 민족의 주보(主保) 즉 수호(守護)가 되신지도 어언 三十五년이언만, 아직 그 어른의 이렇다 할 전기가 나타나지 않음에는, 너무나 섭섭하고, 통분하고도 억울한 심사를 걷잡지 못하여 외람하게도 참고 될 문헌을 찾고 족보를 뒤지고, 도서관을 드나들고 하기를 三년이나 걸려서, 비로소 원고지를 펴고 붓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번이나 외람과 송구의 주먹이 나의 의욕(意慾)을 매질하여 그만 원고지를 찢고 붓을 던지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의욕의 물길은 움츠려 질대로 움츠려진 내 마음을 달래고 격려하여 한편(篇)씩 엮어본 것이 요모양으로 되고 만 것이다.
그 어른의 일생이 불과 二十五성상(星霜)이었다면, 어려서 十五년은 소년시대, 그 나머지 十년이 배우고, 활약하고, 순교로 마친 반생이었었다. 아니 짤막하고도 빛난 일생이었었다.
진리에 목말라하다 못견디어 제국망(鎭國網)을 뚫고 만리의 지나대륙(支那大陸)을 도보(徒步)로 횡단(橫斷)하여 소서양(小西洋) 마카오에서, 배달민족의 긍지를 여지없이 발휘하면서 선진국 사람들의 자존심(自尊心) 꺾기운 차탄속에서, 四년간 형설(螢雪)의 공을 닦던 그 자랑스러운 사실이라던지 하늘을 뒤흔들(헌天)고 바다와 육지를 주름잡던(縮地) 눈부신 그 활약 六년을 그대로 우리 눈앞에 나타내기에나 나라를 구하고(救國) 겨레를 건지려던(濟民) 그 일편단심을 꿈임없이 펼치기에나 몸을 죽여(殺身) 구령대사(救靈大事)에 새파란 청춘을 바친 그 비절장절한 장면 그 모습을 그리기에는 철학비재(淺學菲才)로서는 감당키 어려웠다.
물론 그 어른의 친서(親書)들과 참고문헌이 많아 그 전기 엮기에 큰 애로는 없었을 망정.
참으로 그 어른의 일생은 우리 민족사나, 우리 문화사의 한장을 빛내고도 남아, 세계만방에 외치고도 또 남음이 있을 것을, 불행하게도 이 졸저(拙著)가 그만 망쳐놓지나 않았나 하는 송구심과 외람에 사로잡혀 감히 독자들의 꾸지람을 살까 할 뿐이다.
위선 지면을 통하여 나의 이 심경만을 고백하여 두고 여러 스승들의 현명한 비판과, 알뜰한 편달과 두터운 가르침을 기다리기로 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또 한가지 죄송하게 생각하는 것은 책의 체제가 빈약하기 짝이 없어 우리 김대건 성웅께 욕됨이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점은 변명같지마는 출판사와 상약했던 것이 어그러진 소치임을 사과해 두고 제二판 때는 좀 달라질 것을 미리 말씀드린다.
金九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