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美人傳(미인전) (27) 완덕의 길
발행일1961-04-16 [제275호, 4면]
그가 말하는 요덕은 세가지였다.
『그 첫째가 서로의 사랑이다. 둘째가 일체 피조물에서의 해탈(解脫)이고. 셋째가 끝으로 말하지마는 이게 가장 중요한 덕인데, 다른 덕을 모조리 포함하는 진정한 겸손이야. …이 모든 덕을 지니지 않고서 자기가 아주 관상적(觀賞的)이라고 생각하다가는 큰 망상(妄想)이지…올바른 생각이 고상한 행위를 성취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여성임을 생각할 때 어깨쭉지가 축 늘어질 만큼 여성의 연약함을 언짢게 역였다.
『수로 보아 불과 몇 사람 밖에 없는데 서로 잘못 지난다는 것은 아주 견디기 어려운 무서운 일이다. 천주의 인자하심이 그런 일을 절대로 허락하지 마옵시기를! 자매들아 「넌 날 좋아하지」「넌 날 좋아않지」 이런 어린애 장난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내가 나이 더 많은데」「내가 더 오런 세월을 일하고 있는데」 아무게가 나보다 대접을 더 잘 받는단 말이야」 이런 생각을 품거나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내는 것은 「페스트」란 말이야.』
말 한 마디라도 잘못 해서 남의 원수를 삿거든 서둘러 사과하고 분 풀이를 해야 체면이 서겠다는 생각이 안나도록 기도를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안을 어지럽게 하는 수녀에게는 추호도 용서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보균자(保菌者)는 몰아 낼 것이다. 그 가지를 칠 수 있는 데로 다 쳐버려라. 그래도 안되겠거든 뿌리 채 뽑아버려, 그게 나머지를 전염될 위험에 내 놓기보다 훨씬 낫다. 그런 일은 큰 병이니까! 나는 차라리 우리집에 불이 나서 우리가 다 타는 꼴을 보겠다.』
오락시간에 자기 자신이 유쾌하지 않더라도 자매들과 더불어 유쾌히 지날만한 동정(同情)을 <데레사>도모는 오주의 관상과 심도의 정도로 드높였다. 지상적(地上的)인 집착(執着)과 아무런 공통성이 없는 진정한 애정(愛情)은 덕행의 진보를 돕는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우정(友情)은 상대방이 짜는 베에 가장 미소한 험이라도 보이는 데로 숨김없이 일러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수녀들에게 고쳐야 할 자기 결점을 일러 달라고 간곡히 청했고 또 그들의 비판을 항상 겸손히 받아들였다.
사랑과 해탈 가운데 이러한 강유(强柔)의 겸전(兼全)과 그러한 『검은 체면감(體而感)』의 제거(除去)를 어떻게 성취할 것이었는가? 자기인식(己認識)이 마치 여러 접시의 반찬마다 먼저 먹어야 할 밥과 같아 이 밥이 없이는 영양을 섭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도모(道母)가 자기인식을 강조아니 하는 때가 없었다. <데레사> 자신은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기도와 성총으로써 자책의식(自責意識)의 중압(重壓)으로부터 발전적으로 해방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모토」(座右銘)는
『행동, 고민, 사랑』의 세 마디었다. 그가 고민을 자청(自請)함은 병적인 경향이 아니었다.
『오 사실을 아시는 오주여! 저희들이 자기들을 인식하도록 저희들을 시련하시옵소서!』
고민만이 진정한 우리 역량(力量)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기만족이 그 얼마나 환각(幻覺)인가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 안에 선(善)한 것을 하나도 발견못하는 것이 하도 부끄러워 어린 아이처럼 천자만비(千慈萬悲)하신 오주의 품안에 달아들지 못하고 오주께 감히 접근도 못하는 세심증(細心症)을 위로하는 말을 잇달아 보래였다.
『이 밥은 적당히 먹어야지 위대하신 왕께서 하사(下賜)하신 은총의 보답으로 자기의 상납(上納)이 얼마나 적은가를 명백히 깨달은 그 영혼이 일단 복종하게 되었으면 이 일만을 곰곰히 생각하는데 시간을 더 허비함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자기인식이 우리 용기를 송두리채 뺏어가지 않도록 이러한 이해를 높여야 하니까……』
겸손의 심연(深淵)이 명예의 최고봉에 아주 가까이 놓였음은 그도 역시 오랫동안 체험을 못했었다.
『내 영혼의 조고만한 자리에 이처럼 크신 왕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 내가 알았더라면 그 어른을 거기다가 그토록 자주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때때로 그 어른과 더불어 머물었을 것이며 뿐만아니라 그 어른의 거처가 항상 더럽히지 않고 또 어지러 지지 않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 안에 천주께서 임재하심을 설명하면서 죄를 거미줄에 견주고 착한 주부로서 또 범절 있는 안주인으로서 빗자루를 그처럼 힘있게 내 흔들었던 것이다.
『겸손은 진리의 한계 안에 보존할 것이다. 진리는 장엄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천주께서 우리 안에 거처하시고 또 천주께서 만사(萬事)이시다. ……우리가 영혼의 위대한 존엄성을 모르고 우리 영혼을 이 세상에서 비천한 것의 정도로 격하(格下)시킴으로써 영혼을 모욕한다면 우리 인간은 사실 그대로 짐승보다 더 못된 것이다. …천주께서 후덕하시게도 우리에게 내리신 은총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거짓 겸손은 경계하자. 우리 편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이 천주께서 은총을 허락하시니 우리는 지존께 감사해야지. …언제나 우리가 사실상 가난한 줄 알면서 우리 자신이 더욱 가멸함을 알수록 우리에게 진정한 겸손이 더욱 진보할 것이다.
겸손한 영혼이 천주와 일치하는 놀라운 효과를 그는 설명했다.
『어느 보잘 것 없는 농부의 딸이 만일 왕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들의 자녀들이 왕실의 혈통이 아니겠는가? 오주께서 어느 영혼에게 그만큼 친밀히 당신과 일치하는 큰 성총을 주신다면 그 결과로 어떠한 성과(成果)가 어떠한 영웅적 행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가 말하는 영웅적 행동이란 가장 평범한 행동이라도 행동 마다 완덕으로 성취함이었다.
「가장 완덕있는 사람이란 너희들 가운데서 제일 겸손한 자이며 기도나 탈혼(脫魂)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