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六十만 국군(國軍)을 사목(司牧) 대상으로 하는 종군신부단(從軍神父團)의 대표로서 뿐만아니라 당당히 대령(大領)의 계급장을 붙인 군종차감(軍宗次監) 이신데 이제 「몬시뇰」(崔 主敎)로 승진을 하셔야 하겠읍니다. 사실상의 군목교구장(軍牧敎區長)이신데……』
『하하… 그 대단히 구미가 동하는 말씀이지만 그것보다는 더 급하고 김요한 일이 많이 있지요』
약十五년 가까운 사제생활의 三분의 二이상을 전선(前線)과 후방(後方)에서 군인들과 같이 지내온 <베드루> 안(安達遠) 신부는 본시 쾌활한 그의 기질(氣質)이 군인신부로서의 관록(貫錄)에 푸라스를 하고 있지만 자유당정권 시대 三·一五 선거직전에는 『가톨릭은 야당(野黨)』이라 하여 군종차감자리 마저 물러앉아야 했던 것이다.
○…오랜 군(軍)의 역사는 무력(武力)만으로 승리를 걷우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으며 二차 대전을 통하여 열강(列强)의 군「차폴렌」(軍宗)들이 걷운 정신적 업적으로 「무신론」(無神論)을 창도(唱導)하는 공산주의 뿔럭을 제외하고 모든 자유방(友邦)들은 한국전에 참전할 때에도 그들의 「차플렌」을 군대와 같이 투입시켰던 것으로서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하는 우리나라가 국군에 군종제도를 창설한 것이 一九五一년 四월 十一일, 그러니까 금년은 군종설치 十주년이다.
○…『우리 종군신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좀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그야말로 고군(孤軍)분투하고 있읍니다』
군대내의 정신적 힘이 되고 소금이 되며 젊은 남자들만이 모인 특수한 사회에서 윤리(倫理)와 도덕민의 생활지도를 맡아보는 종신부의 할일은 너무나 많고 벅차다.
○…『할일은 태산 같은데 사람도 부족하고 예산(豫算) 배정도 없어요…… 현재 육군에만 二백七十여명의 목사가 있는데 신부는 단 세사람, 해군 역시 목사 二七명에 신부 五명, 공군 역시 목사 一七명에 신부는 三명뿐으로 육해공군을 합쳐도 신부는 겨우 十一명 뿐입니다』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얕은 사회에서 신부님들이 사명을 완수해 나가기엔 허다한 애로가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불과 열두 사람의 종도(使徒)가 이교(異敎) 정신을 처이기고 북방만족(蠻族)을 가르쳐 서구(西歐) 문화의 굳건한 터전을 닦아 놓은 거와 같이 「프로테스탄트」의 수적(數的) 위세에 억눌리지 않는 우리 신부님들의 종교인다운 품격과 자아희생은 광신적(狂信的) 전도방법으로 장병들에게 불쾌로운 감정을 주는 그들보다는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