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유데아」의 수도로서 지리적인 형태보다도 전 「유데아」 민족의 종교적인 중심지로서 거기에는 유일한 성전이 있는 천주님의 도시로서 당시의 고유한 의의를 가졌던 도시요 또 예수님의 일생에 있어 그 구속사업의 여러가지 중요한 일이 거기서 실현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세주께 대한 예언 특히 그 구속사업의 완성인 그리스도의 수난이 여기서 이루워짐으로써 즉 천주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사랑의 계시가 여기서 실현됨으로써 「예루살렘」은 또한 그리스도 신앙의 목적인 천국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의 길은 구세주 예수님이 당신의 구세사명을 실현하시는 길이며 구세주의 신자들이 구원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구세주께서 당신의 구속사업의 완성이란 가장 중대한 사명을 목전에 두시고 당신의 구속사업을 이어받을 당신의 제자들을 데리시고 이 「예루살렘」에의 길을 걸으시며 당신 구속사업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프로그램」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구세주의 가르치심과 그 영적을 누구보다도 많이 듣고 본 바 있고 항시 구세주를 따라 다니며 감이 살아온 그 제자들은 구세주의 수난의 깊은 신비를 깨닫지 못하였다.
한편 예수님의 맘과 형편으로 보아서는 이렇게 정신의 눈이 먼 것과 마찬가지의 안타까운 제자들이 있는데 이제 또한편에는 이와 정반대로 대조가 되는 겉으로는 가련한 불구자에 지나지 않지만 그 정신과 마음은 천주님 앞에 순진하고 깨끗하고 건전한 소경이 나타난 것이다.
즉 길가에서 구걸이나 하며 앉아있던 한 소경이 <예수 나자레노>가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고 큰소리로 <다위>의 자손 예수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창피스럽게 생각하고 스승 예수님에게 실례가 되고 수치되는 줄로 알아 잘하는체 하고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느 참구원자와 자기의 참구원의 기회를 본 이상 누구의 방해도 어떠한 난관도 문제가 아니다. 더욱더욱 소리질러 <다위>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는 것이었다. (<다위>의 자손이란 명칭은 당시 「유데아」인들에게는 구세주란 말과 같은 뜻이었다)
눈뜬 성한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참구세주이신 것을 아직 몰라보는데 눈먼 병신거지는 예수님을 참구세주로 확신을 가지고 알아보는 것이다. 『네 신덕이 너를 구원하였노라』 물론 예수님은 그 소경으로 하여금 완전히 성한 사람과 같이 보게 하겨주시는 영적을 행하사 그를 구하여 주셨다.
천주님을 천주님의 뜻을 「예루살렘」을 즉 천국을 그리고 천국에의 똑바른 길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이기주의적인 고집, 편견, 육신사욕과 세속 허영에 사로잡힌 우리정신과 맘의 눈병(소경)에 기인하는 것이다. 구교우요, 교리를 잘알고 또 무수히 강론을 듣고 또 수계(守誡) 범절도 하기는 하나 신앙생활에 있어 열성이 없고 태만하고 실제 생활이 외교인보다도 별로 낫지 못한 미지근한 교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반대로 단 한번의 권고로써 단 한권의 책으로써 단 한번의 어떤 인생고의 체험에서 혼연히 전체생활태도를 백팔십도로 돌려 그 힘드는 준비를 하고 신앙생활에로 들어오는 외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천주님의 진리앞에 순수한 겸손된 맘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소위 『맘이 착한 사람들』이란 이런 사람들이오, 구세주께서 구속의 은혜로써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천상의 축복인 참평화란 바로 이러한 『마음이 착한 사람들』의 차지인 것이다.
『구오 바디스 도미네』 <베드루> 종도가 <네로>의 박해를 못이겨 마침내 「로오마」를 탈출하여 「히삐아스」 가도(假道)에 이르렀을때 홀연 예수께서 그 앞에 마주 나타나 오신 것이다. 『주여 어데를 가시는 것이오니까』 이렇듯 「로오마」는 박해가 심하여 무시무시한데 할 수 없이 나도 최후로 「로오마」를 탈출하여 피난을 가옵는데 주는 어찌하여 이 「로오마」로 도리어 들어오시나이까. 이런 뜻이었다. 예수님의 대답이 『나는 이제 너 대신 「로오마」로 들어가 또한번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저 한다.』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루> 종도는 물론 자기의 생각이 잘못인 줄로 깨닫고 「로오마」로 돌아가 「로오마」인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위대한 순교를 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곳 또 올바로 나가는 그길을 알지 못하고 엉뚱하게 방황하거나 때로는 정반대로 가는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눈을 가리워 천주님의 도시 「예루살렘」 즉 천국을 못내다보고 또 바로 신앙도리를 실천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눈앞에 장해물이 무엇인가 천주님의 진리보다도 이 진리 실천의 계명보다도 우리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우리의 육신과 소망에 애착되어 천주님 앞에 순수하고 정직하고 충실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우리 맘의 병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여 우리 자신의 현재생활, 행동이 올바르게 나가는지 『주여 어데로 가시나이까』하고 항상 우리 양심의 길에서 우리를 마주오시는 예수님께 물어보고 자신의 소경됨을 저 「예리고」의 소경이 예수님께 애원하듯이 『주여 나로 하여금 내 신앙생활의 올바른 길을 보게하여 주소서』하고 기구해야 할 것이다.
丁旭鎭 神父(安城本堂 主任 安法中高校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