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하나의 「드라마」(演劇)라 했다. 홀가분한 설정(設定)인지는 모르나 이승을 「스테이지」(舞臺)라 치고 사람 저마다는 하나의 배역(配役=天職)을 맡아 무대에 출연하는 「스타아」(俳優)들이라고 말한 친구가 있다.
연극이 끝나 막(幕=死)이 내리자 화장을 지우고 분장(扮裝)을 벗어버리고 나면 아무나 매한가지 - 누가 제왕역(帝王役)을 맡고 누가 지겟군 역을 감수(甘受)했느냐가 문제될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기역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거기에 최선을 다했으며 연기가 어떠하였고 예술적 효과(效果=愛德·善功)를 얼마큼 냈느냐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승삶에 있어서도 이 비유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천주 우리에게 맡기신 「타렌트」의 활용처리(活用處理) 여하가 문제되는 것이 아닐가 한다.
사람이 한번 나서 한번 가는 것은 천정(天定)의 사실이다. 어길 수 없는 사실이면서 막상 당하고 나면 남은 마음이 뼈에 저려 슬퍼지는건 웬일인가?
인성(人性)이 약한 탓인가? 상실(喪失)의 아쉬움이 움을 파서인가?
아니면?
여기 하나의 인간상이 있다. 시침(時針)과 더불어 잊혀져야 함에도 도리어 역전(逆轉)하여 내 가슴에 영지(領地)를 넓히면서 있는 한 잔상(殘像)!
내가 그분을 알기는 五년전 정초(正初) 가톨릭시보사(時報社)에 부임해 가서부터의 일이다.
검으틱틱한 얼굴에 패기(覇氣) 넘친 눈망울이 무엇이고 해내고야 말 의지의 사람이라는 첫 인상을 받았다.
편집동인(編輯同人)으로 나날이 이마를 맞대어 사귈수록 선이 굵어 적극성 있는 행동파이면서 전략가 못지 않은 치밀한 지낭(智囊)의 소유자 - 「앤 밸런스」의 「밸런스」(不均衡의 均衡)란 말이 쓰여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겸전(兼全)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짙어갔다.
현실을 직시하는 낮선 눈매! 허나 체념(諦念)이나 불만에 치우치치 않고 모순 덩어리 불협화음(不協和音) 투성인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서 어떻게든 타개책을 모색해내고야 마는 끈덕진 집념(執念)과 투지에 넘친 단행력(斷行力)으로 하여 둘레의 기대와 신뢰를 모아오던 분 『이 차거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좀더 따스하게 잘 살게 되어야 할텐데……』
입버릇처럼 뇌이며 야인선생(也人先生) 비오 선생(非悟先生) 약망(若望) 형과 더불어 단골인 남산(南山) 골다릿목 가게며 그람통 술집에 곧잘 들려서 대구(大邱) 명물 막걸리 몇사발을 들이키고 개장국을 자시고는 민족 정기를 북돋우며 나날이 기울어져만 가는 이 땅의 쓰라린 현실을 개탄하였고 상처뿐인 조국 · 겨레의 구령(救靈) 걱정에 몸부림 치던 일이 어제만 같이 눈에 서언하다.
현실과의 불타협! 불의를 보고는 못참는 성미!
개성이 너무도 뚜렷하였기에 불우(不遇)하였던 사람?
배율(背律) 속에 조율(調律)을 애쓴 악사(樂師)
이것이 인간 김용태(金龍泰)였다.
이땅 곳곳이 가톨릭문화로써 복된 땅을 만들고야 말리라는 커단 꿈에서 한달이 멀다하고 육신을 혹사하여 동으로 서로 뛰어가신 열딘 정성을 아는 이는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역경이며 인고(忍苦)가 외길 『천주의 나라를 땅위에 넓히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이었음을 잘 아는 우리로서는 그분의 죽음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보람있는 생애에 머리가 숙어지는 동시에 그 남기신 뜻을 이어 한층 눈부시게 살려 나가겠다는 사명감(使命感)이 앞선다.
그 마지막 산화(散花) 또한 남아다웠다.
재작년 여름의 일이라고 기억된다.
가톨릭시보의 눈부신 앞길을 개척코자 三복더위를 무릅쓰고 연일 경기 · 강원 · 호남을 전전(轉轉)하면서 심려(心慮)와 여독(旅毒)에 지쳐서 그만 발병한 것이 오늘의 원인이 되었음을 측근자들은 다 아는 터이고, 결국 그분은 시보를 위한 순직자요 나아가서 가톨릭문화의 순직자였음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이제 우리가 고인을 아끼는 것은 산더미 같이 가로놓인 숙제를 남겨둔채 가톨릭언론의 앞길이 휘언히 동터온 이때에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분이 의욕과 포부에 불타는 동지가 한창인 나이에 중도에서 훌쩍 가버렸다는 아쉬움이 고인을 잃은 설움에 앞질러 온다.
비단 어느 개인이 십자가뿐일 수만은 없는 소용돌이 치는 세말적(世末的) 악과 어둠의 혼탁(混濁) 속에서 한오리의 빛이라도 더 던지기에 온 생명 고스란히 심지도 타 버린 순교자 - 고민하는 세계상에 대하여 커단 등대는 되지 못했을 망정 무(無)에서 유(有)를 내시고 평범속에서도 초성(超性)한 기적을 나게하시는 착하신 님(天主)을 알고 굳게 믿어 그 뜻을 따르는 슬기를 지녔기에 한위가 결코 헛되지 않았으리!
남기신 불씨가 자라 백배도 되고 천배도 넘어 사람들 가슴 가슴에 하늘빛을 남기면서 번져나갈 것을 믿어, 지금은 웃음 머금은 책주의 품에 고이 잠드셨을 그분의 귓전에 자장가 한마디 더 보탠다.
『기리에 엘레이손, 그리스떼 엘레이손 기리에 엘레이손』
李錫鉉(가톨릭 소년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