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살짝 달아나야지……』 하시던 바로 그 토요일 저녁때 四十八년이란 세월동안 같이 생각하고 행동한 당신의 넋과 살의 갈림
영원의 피안(彼岸)에로 떠나시는 당신 영혼을 위로해 드리려고 모이신 당신 친구들의 작별에 아무 대답도 없이 잠드시는듯 고요히 가버린 그대의 운명(運命)은 바로 오래오래 잠자시는 그것이었고 조심스러워 눈물 한방울도 흐르지 못한 엄숙한 순간이었읍니다…
<벨라도>씨 당신은 나의 구원자였어요 열일곱살 되는 꽃시절에 주의 시련(試鍊)의 화살을 받은 나는 온몸에 흉터가 있는 것 보다도 보기싫은 얼굴이 되었읍니다. 뭇남성이 돌아보지 않는 기로에 선 한 처녀를 당신은 구원했읍니다. 『몸의 삼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얼굴하나로 몸의 전부를 측정하는 자가 아니오』라고 말씀하신 당신은 굳은 신념으로 나를 아내로 맞아주신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큰희생, 내겐 너무 과한 존재, 감사와 흐뭇한 행복의 날은 가고 어느듯 나는 여섯남매의 어머니가 되었지요 여덟식구의 뒷바라지를 혼자손으로 다 하기엔 허약한 내 힘이 벅찼고 이밖에도 대구 十·一사건때 당신의 죽을번 했던 위험을 비롯하여 당신의 다섯차례, 수술(手術) 네째 아이의 폐염, 다섯째 아이의 소아마비 나의 산후(産後) 위급 등 아홉차례나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항시 웃음소리 나는 「스위트홈」 어머니도 그가슴 날카롭게 찌른 막내딸 나의 단락한 가정을 보시고는 만족했지요……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더니 못난 이 아내도 몇번인가 욕심을 부렸어요 『좀더 큰집을 보다 나은 교육을……』하고 보채기도 여러번 그때마다 당신은 『우리보다 더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소, 저 성가(聖家) 상본을 보시오』라고 격려해 주셨지요
『남에게 베푸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라는 당신의 「못토」는 두벌 옷을 나누려했고 너무 과도한 수고를 하시었어요, 그때 역시 『너무 과하다』고 나는 불평했지요. 그러나 『도와주어야 하오 화목시켜야 하오 인도해야 하오』라고 한결같은 당신의 대답……
『나는 냉정하게 돌아가련다』고 하시더니 『우리 수녀의 손으로 「루르드」물 한방울만 먹여주면 내가 나을텐데……』라고 하신 애절한 말씀은 믿음직하지 못한 아내에게 어린아이들을 다 맡기는 것이 너무나 애처러워 살아보기를 희망했던 당신의 마지막 애원이었지요
삶과 죽음의 대권이 어찌 주명이 아니리오.
『부르시나이까』 『나는 가야겠소』 『섭리에 순종하리오』 『내 간후에 소리내어 울지 말아라』 『저 십자고상은 학생시절 동경서부터 뫼신 것이니 그냥 뫼시고 이 묵주로 평생 신공 잘 바쳐라』라고 <토마스> <알벨도> 두 큰 아이에게 주시며 『부탁은 이후에 하지 할말 없다』고 열일곱살이 채 못되는 맞아들에게 뒷일을 부탁할 체면없어 천당에 가서 도우겠다는 뜻의 간단한 유언(遺言)!
어찌 눈물이 없겠읍니까 터저나오는 울음을 몰래 억누르면서 행여나 떠나시는 당신 마음이 흔들릴가 태연함을 꾸미었던 이몸의 심정!
이젠 평안히 쉬세요 진선미(眞善美) 천주를 바로 보는 지복(至福)의 거룩한 곳에서 아직도 애증(愛憎)의 세계에서 헤메이며 번뇌(煩惱)하는 이몸을 굽어보시며 우리 다시 황홀하게 만나는 날까지……
이승에서 그대 못다하신 사업과 뜻을 이어 이루워 나가도록 가호(加護)를 빌어주소서.
불초 <안나> 김정옥
명목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