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천주께서 창조하사 영원한 복락을 위하여 예비되었으므로 진리의 탐구와 발견이 당연함은 진리가 인간정신 내적(內的) 활동의 직접 대상이기 때문이다.
■ 인간 그리스도신자에 있어서의 진리
그것을 왜 진리라고 일컫는가? 그것은 천주의 감응(感應)인 연고이며 인간과 진리 사이에는 단순히 우연적 관계가 아니라 필연적이며 또한 천주의 본질적 관계가 있다.
인간측에서 일으켜 지속할 보다 요긴한 일은 진리 승인에 대한 태도가 창조자, 구속자, 영광자의 계획에 협조할 신성하고 극히 중대한 책임을 분발케 하는 일이다. 이 일이야말로 특히 성사성총을 통하여 천주의 가정에 자기가 속한 표적을 뚜렷이 지닌 그리스도신자에 대하여 말해야 할 것이다. 이에 인간에게 부하된 존엄성과 지대한 책임이 존재하고 또 영속(永續)한다.
이 일은 모든 그리스도신자에게 가장 완전하게 가능한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이 일은 곧 모든 인간과 전사회질서에 생명을 주시는 「살」이 되신 「말씀」이신 천주 성자를 공경함이다.
■ 제八계명
성교회 박사 <베드루 카니시우스> 성인이 만대(萬代)의 교리서(敎理書)인 그의 유명한 「숨마 독트리네 크리스티아네」(一五七一년 刊 一四一 페이지)에 투철하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이 계명의 소극적 적극적 양면을 표현하였다.
소극적 면은 무엇인가? 법적 판결에 있어서 어떠한 위험이 있는 허위와 기만의 증거 그리고 비록 공식 판결이 아닐지라도 밀고자, 중상자, 독설가(毒舌家), 고발자, 아첨자가 이웃사람의 호평을 어떠한 모양으로라도 손상시킬 수 있는 허위와 기만의 증언을 금하는 일이다. 모든 거짓말과 이웃사람을 거스리는 모든 혀의 남용을 금하고 또 선행(先行)하는 三개조의 계명 즉 죽이지 말라고, 간음하지 말라고, 도적질 말라고 같은 방법과 같은 어조(語調)로 금한다.
그 반면에 적극적면은 기만없이 구실(口實)없이 모략없이 자기 이웃사람의 변호와 이익을 위한 착하고 친절한 말을 찬양하는 일이다.
참된 일을 생각하고 존경하고 말하고 행하라
그러므로 이에 그 자체를 달가히 또 굳이 부과하는 진리를 대면하는 인간 즉 신자가 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인간을 자기 책임으로 대면할 자리에 놓는다. 즉 진리에 항구하고 자기의 참된 사고를 기루고 진리에 합당한 행동을 하도록 설복하는 힘을 가지고 진리를 승인하든지 거부하든지 각 사람을 부르신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참된 일을 생각하라. 구속, 교회, 도덕, 법률, 철학, 예술에 관하여 위대한 초자연적이며 인간적인 현실에 대하여 명백한 이념을 가져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자신을 위하여 양심적으로 또 올바른 의향으로 올바른 이념의 형성을 구하라.
불행히도 이 모든 과업을 질머진 사람들이 최소한도로 말하여 준비가 없음을 뜻하는 형식으로 논쟁이 토론에 있어서 또는 그 토론에 언급함에 있어서 당황한 우연성이 거의 날마다 일어나는 일이 예사로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가족제도의 보장을 목적으로한 여의 최근 연설에서 여는 『실천할 의향과 방법을 지닌 모든 인사에게 청하여 그들의 간섭이 이념의 혼란이 아니라 항상 권리와 존겸을 위하여 명백히 설명하는 편에 있도록 여론에 영향을 끼치라』고 하였다. (一九六○년 十월 二十五일 「로오마 고등법원」에 보낸 멧세지)
참된 일을 존경하라. 이것은 개인, 가정, 직장, 사회 - 인생의 모든 면에 있어서 빛나는 모범이 되라는 요청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요왕 八장 三二절 참조) 진리는 공공연히 인간적 염려없이 그 진리를 고백하는 자는 누구라도 고상하게 한다. 그러면 어찌하여 진리를 존경하기를 두려워하고 진리를 염려하게 하는가? 어찌하여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조화되지 않는 타협을 승낙함으로써 자기 양심과 조약을 맺으려 내려와 모든 암흑을 쫓는 빛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침투력을 자기 자신 안에 지닌 자가 그와 반대로 실천하는가? 진리를 점차로 흐리게 하는 자는 유죄할 뿐 아니라 완전하고 현대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 자기 태도를 애매하게 함으로써 진리를 배반하는 자는 마땅히 유죄하다.
그러므로 굳건하게 강력한 확신을 지닌자의 용감성을 가지고 진리를 존경하라.
그뿐 아니라 참된 일을 말하라. 자기 어린아이에게 거짓말을 말라는 자모의 꾸지람은 유년시대부터 배운 풍속 습간이 즉각적이며 진실한 말을 필요가 요구하는 때는 어느때라도 순교자와 증성자(證聖者)의 용기로써 할 수 있는 진실로 정직한 인간 즉 완전한 그리스도신자를 예비하는 진리의 첫 교육이 아닌가? 이것이 진리의 천주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한사람 마다 요구하시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참된 일을 행하라. 그것은 사람마다 자기를 그 안에 담거야 할 그리고 생활상 행동마다 품격을 띄게하는 빛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진리의 지식을 전파하고 진리의 권리를 방위하고 영혼 - 특히 솔직하고 관대한 청년의 영혼을 형성하여 그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속까지 진리에 젖게 하는 진리의 사도직을 이행아니치 못하게 한다.
■ 역(逆) 十계명
참된 일을 생각하고 존경하고 말하고 행하라. 인간적이며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이 모든 기본적 요구를 발하려고 입을 버릴때 마음으로부터 항의가 입술을 올라온다. 이세상의 어느곳에 진리에 대한 존경을 발견하는가? 우리는 가끔 그리고 극히 빈번히도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따르는 천주 계명의 七개 조에 관하여 극히 뚜렷하고 확실한 지시인 접미사(接尾辭) 『말라』를 취소하는 철면피하고 무례한 「역十계명」과 부딪치지 않는가?
우리 눈앞을 지나가는 인생이 -마치 진리를 거스리는 마귀의 음모인듯이- 五는 죽여라, 六은 간음하라, 七은 도적질하라, 八은 거짓증참을 하라고- 실지로 정반대를 유유히 이행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산위에서 <모이세>에게 선언된 영원히 명백하고 유효한 신성한 율법의 계명이 남아있다. 『너의 이웃을 거스려 거짓 증참을 하지말라.』 이 계명은 -다른 계명과 같이- 적극적 및 소극적으로 모든 그의 보과(報果)와 함께 살아있다.
현실과 더불어 인간 심리에 일치되는 진실, 성실, 공저에 대한 의무가 있는가 하면 슬픈 가능성 -무엇보다 가장 슬픈 것은- 거짓말하는 사실, 허위의 사실, 진리를 흐리게 하는 중상의 사실이 있다.
우리는 두가지의 인간생활 방식 관념 사이에 살고 있게 되었다. 한편에는 이 세상의 현실을 시험하고 연구하여 천주의 설계와 합치되는 실천을 따르게 하였다. 다른 편에서는 -여는 그것을 거듭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동일한 현실의 위조가 최근과 그리고 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술과 발명으로 용이하게 되었다.
참된 일을 생각하고 존경하고 말하고 행하라는 이 四중의 이상과 이 이상의 복면된 배반으로 개방된 매일의 광겨을 목전에 두고 심정은 슬픔을 억제할 수 없다. 그리고 여의 소리가 떨린다.
모든 일과 모든 사람에 불구하고 『주의 진리는 영원히 계속』(시편 一一二) 되어 우리 눈앞에 더욱 밝게 빛나고 우리 마음 속에 들리기를 원한다. 이 시의 감명은 이 세상이 지나가고 있는 시대는 순간적으로 다시한번 승인함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는 훨씬 더 악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시끄럽고 간사한 보다 흉폭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신적 승리가 『나무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