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미술을 운위(云謂)한다면 우리들은 아직 사실적(寫實的)으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과 명확하게 형식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는 「쟈바」인 미술가와 「바리」인 미술가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각개 개성과 특징을 지닌 서로 다른 종교안에 서로 상이(相異)한 미술분야를 또한 가지고 있다.
동시에 현재 이들 모든 미술은 일치된 같은 방향 즉 「인도네시아」 문화에로 결속되가고 있다.
회화(繪畵)와 현대 문학의 결실이 희망적임은 사실이다.
단지 이러한 분야에는 전통이 없고 시초가 거의 일치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모든 미술은 아직도 아무런 형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미술 분야에서 단지 조형미술(造形美術)에 있어서 「크리스티안」을 나타내려고 오랜 기간을 노력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만 논증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네시아」의 과거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인도네시아」 군도(群島)는 결정적으로 이나라 문화를 향상시킨 세게의 중요한 영향을 받고있다.
또한 이들 영향은 연속적으로 받아왔다. 즉 「인도」 「이스람」(회교도) 그리고 「화란」을 통한 서구라파 문화이다. 조각(彫刻)은 「인도-쟈바」왕조(王朝)시대를 통하여 현저하게 발달하였다.
「인도」의 영향은 주로 건축과 족가에 기반을 주었다.
그런데도 「인도네시아」 형식은 「인도」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고 「인도-쟈바」왕조의 놀랄만한 조각상(彫刻像)과 부각(浮刻)은 현재와 같은 「인도네시아」 형식을 전통지워 놓았다. 「이스람」의 내도(來到)는 고대 「쟈바」미술을 완전히 근절(根絶)시키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에 있어서 「이스람」들은 미술분야에 자신을 표현시킬 기회가 별로 없었다. 보통 흔히 이야기하기를 「이스람」은 조형미술(造形美術)에 관하여는 소극적인 영향을 주었다고들 한다.
사실파(寫實派) 회화(繪畵)는 고대 「인도네시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꼭두각시에다 장식하는 「바탈」따위의 옷에 그린 것을 제외하고는 외화라곤 거의 없었고 또는 회화의 고대 형식인 「와양」(꼭두각시의 일종)의 장면을 장식하기에 그린 활인화(活人畵) 등에 불과하였다.
처음으로 「유화」(油畵)를 그린 화가는 <롸덴 사레>씨이다. 그는 구라파인에게서 교육받고 구라파에서 잠시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인도네시아」 미술분야에 크게 유별(類別)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이 다른 구라파인 작품과 아무런 구별도 없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는 무슨 특별한 「인도네시아」의 특징을 나타낸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남긴 과업이란 「인도네시아」 내에 유화(油畵)의 기술을 소개했다는 것 뿐이다.
그후 「화란」 화가의 형식이 창조되었다. 『멋진 「인도」 스타일』이라고 불리워지 이 회화는 「인도네시아」 풍경을 「스테로」판(版)으로 묘사한 것이다. 푸른 산과 누런 논밭이라든가 붉은 장미나 흰구름 등을 아름답게 그려놓은 것이다.
이러한 『멋진 「인도」 스타일』은 대부분의 화가가 이러한 수법을 사용하여 회화를 아직도 그리고 있을 망정 「인도네시아」 미술의 현실적 발전에는 별로 큰 의의(意義)가 없었다.
바로 이때에 이러한 「낭만파」(浪漫派)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들이 나타났다. 一九三七년에 몇몇 화가들은 <아판디>씨와 <수죠죠노>씨 지도밑에 화가단체를 창설하고 「낭만파」를 공격하며 개성적이고 사실주의 형식을 위하여 투쟁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사실을 「인도네시아」의 현대회화의 시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후 전국적으로 국민들의 정신감정은 높아갔다.
각 미술의 모든 분야는 활발하게 향상하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청년층의 미술가들은 새롭고도 개성이 뚜렷한 길을 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는 「불란서」 회화에서 영향받은 또하나의 강력한 서구라파 영향이 현대회화가 있었으나 이들은 모다 「인도네시아」 특색으로 화했고 주로 색채의 배합과 장식적인 「모티흐」(主題)를 사용함으로서 뚜렷이 나타냈다.
그러면 그중 어느것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그리스도교」 미술로서 가능하였는가?
전자는 「인도네시아」 조각가들에 의해서 조각상(彫刻像)을 제작토록 노력했고 주로 서구라파 「모델」의 모조(模造)에 불과하다. 또다른 노력은 소위 『멋진 「인도 스타일」에다 종교적 주제(主題)를 표현한 것이다. 이 회화야말로 어느 사실적(寫實的) 종교회화보다도 더욱 기술적으로 잘 나타냈다.
다행히도 「인도네시아」에는 많은 젊은 화가들이 현대 회화의 새로운 길을 걷고 있으며 특징있는 「인도네시아」적 표현을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수성심」(그림을 보라)을 그린 <시달타>를 위시하여 「무염시태」(그림)를 그린 <키젠>과 같은 비그리스도교 미술가와같이 많은 미술가들은 가장 형식적인 방법으로 전통적 「폼」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이 참다운 「인도네시아」 표현에 공헌할 것이냐에 대하여는 아직은 모르나 그러나 성실한 「인도네시아」 미술에 향하는 길은 이미 열렸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쎄티아와티 女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