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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스띠노 시절] 12. 미사와 제사 그럼 어쩔 것인가. 할수 없이 나 대신에 내가 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생명을 희생시킴으로써 내 뜻만은 표현해야했다. 즉「나는 하느님...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3-01-16 박상태 신부ㆍ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11. 미사의 의미 이렇게 비겁하고 무기력하고 옹졸하던 사도들도 일단 성신께서 강림 하심으로 성신과 그 칠은을 받은 후는 어떠했던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12-12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10. 미사의 절차 제사의 다섯가지 요소를 듣고 보면 예수님의 일생은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의 일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동정이신 마리아의 태를 빌...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11-21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9. 공의회와 미사전례 제2차「바티깐」공의회전에 입교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번 공의회에서 우리 눈으로 보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개혁된 것이 있다면 전례의 개혁...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11-07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8. 신학교 성당 대건학교 정원 중앙 정면에서 보면 이 학교의 구조는 종각을 중심으로 한 서향 2층 건물인데, 1층은 꼭같은 규격의 아아치로 지행되어 있다는 것을...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10-24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7. 신학교 화단 이 곳이 나로서는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모교가 되는 곳이다. 지금은 대건중 학교 정원이 조성 되어 있어 옛과는 많이 변모되어 있으나 다행히 건...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9-26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6. 구 남산성당 성모당에서 내려와 교구청 현관에 이르러 正北을 향하면 돌계단이 밝히는데 이것은 옛날 그대로다. 그 계단을 밟고 10여보 내려오면 교구청 西門(...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9-12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5. 성모동산 성모당에서 이번에는 남산성당쪽으로 가보자. 지금은 성모당에서 돌아오면 우선 담과 쪽문이 사람의 길을 가로막고 있지만 옛날에는 이것들이 없...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8-29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4. 구 주교관 지금은 성모당에서 교구청으로 갈 때 동쪽에 있는 架橋를 건너면 교구청 2층이 되는데 그때는 성모당에서 한 발자국 올라서면 주교관 서쪽 베란다...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8-22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3. 두 신부님 당시 明治町(지금 계산동) 주임신부님은 요셉 베르 모렐(Joseph Vermorel)이라는 지도 이미 불란서 신부님이었는데 물론 이 분에 대한 평소에 쌓은...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8-15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2. 조행「병」의 문제아 각선 하고 독자들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정확히는 1930년대 착하기만 하던 백의 민족이 일제의 간악한 수탈에 견디다 못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8-01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나의 유스띠노 시절 ] 1. 폐교의 아픔을 딛고 서목(書牧)신학 대학이 서울 · 광주 대신 학교에 이어 우리나라 제 3의 사제 양성의 요람으로 금년에 개교를 보게 됐다. 대구에서는 성유스띠노 신... 기획 | 나의 유스띠노 시절
1982-07-25 박상태 신부ㆍ대구 비산동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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