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사제서품 25주년 전후된 신부님들이 함께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모여 신심과 우정을 돈독히 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사제생활을 성실히 하기를 원하신 교구 주교님과 어르신들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개구쟁이 분위기를 다소 지니고 있던 신학생 시절과는 달리 모두 성숙함과 여유에서 나오는 중후한 분위기를 지닌 모습이어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한 좋은 시간이었다. 교구에서 그러한 프로그람을 시행해온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로 날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고달픈 일정에도 불구하고 새벽미사에 함께 하지 못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미사주례는 돌아가면서 했는데, 동료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 강론에 깊은 확신과 사랑이 배여 있어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한 동료 사제는 필자가 이 글에 언급할 만큼 깊은 인상을 주었다. 평소에는 평범한 인상을 보이던 그가 미사를 드리는 동안 거룩한 기운을 매우 강한 강도로 뿜어내고 있었다.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필자는 그의 모습과 자태, 눈빛과 언어에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체험을 했다.
그는 여러 본당들과 교구청에서 일했고 사회복지 시설에서도 장기간 근무했다. 순례 중에 나눈 많은 대화들 중에 그가 사회복지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사회복지사들의 복지에 대해 말하곤 한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이제는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많은 수의 복지시설들도 거의 예외 없이 국가의 복지예산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이나 특정한 단체들이 낼 수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돈은 물론 국민이 낸 세금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모두가 이런저런 기회에 낸 돈이다. 그의 말을 여기에 정리해본다.
“약 천오백 명이 함께 살고 있는 희망원에서 1년 동안 지출하는 경비는 우리 교구 1년 예산에 맞먹을 정도로 많아 1백억이 넘는다. 그런데 그중 약 50%가 그곳 직원인 사회복지사들의 임금으로 나가고, 각종 건물 운영비와 기타 경상비들을 제외하면 복지 대상자들이 먹고 입는 데에 지출되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건 뭐 사회복지사들을 위한 복지시설인지 뭔지 판단이 서지 않더라.”
“그래? 그런 줄 몰랐네. 그런 면으로도 생각해 볼일인 것 같구나. 그렇다고 사회복지사들의 임금이 평균보다 높은 것은 아니잖아.”
그와 대화하면서 그 순간만은 사회복지사들의 복지에 대한 말이 필자의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예산의 절반이 교직원 임금으로 지출되고 있는데 이 사실에 대해서는 ‘그런가보다’라고 여기고 만다. 그런데 복지시설 예산의 절반이 임금으로 지출된다는 사실은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에서 ‘그 좀 심한데…’라는 생각으로 커진다.
그렇다고 어디 특별히 시비할 만한 것은 없다. 그곳에는 정신적?육체적 심한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들을 돌보는 일은 상당한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설계된 프로그람을 따라 협동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수의 직원들이 함께 할 것이고, 그것은 그만큼 많은 인건비의 원인이 될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상자와 사회복지사들의 처우를 더 낫게 하려면 국가에서 복지예산을 더 책정하여 지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그만큼 세금을 더 걷든지 다른 곳에 쓰일 돈을 이곳으로 배정해야 할 것이다. 세금을 더 걷고자 하면 개인이나 법인의 활동에 부담을 그만큼 더 줄 것이고, 다른 곳에 쓰일 돈을 돌려서 쓰면 국가의 균형발전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귀찮고 구차한 일이다고 생각하여 복지시설을 폐쇄한다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도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다.
복지 대상자들의 복지도, 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의 복지도, 그들이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묵묵히 세금으로 뒷바라지 하는 일반 시민들의 복지도 모두 중요하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어느 한 쪽이 목소리를 지나치게 높이거나 하면 모두의 복지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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