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의 온화한 미소와 말씀이 봄비처럼 내 마음을 적신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추기경님의 이 한마디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영적 말씀으로 다가온다. 그분은 천국으로 가셨지만 삶으로 보여 주었던 헌신과 실천이 전 국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고 동참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자이건 아니건 추기경님의 삶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큰 감동을 선사했다. 추측컨대 이번 선종을 계기로 쉬는 교우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일반인들에게 ‘가톨릭’이란 종교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다. 추기경님이시니까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분은 돌아가시면서까지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파한 이 시대의 진정한 예언자요 선교사였다.

현재 교회안팎으로 추기경님의 정신을 본받기 위한 현양사업이 본격 추진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 뜨거운 추모열기가 이젠 ‘감사와 사랑운동’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은 더욱 뜻 깊고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다. 그분이 남기신 감사와 사랑의 메시지를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사순절은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수난의 길을 묵상하며 우리도 그 길을 본받아 동참하는 시기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며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참회의 절기’인 사순절에 추기경께서 그러하셨듯이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사랑 나눔이 널리 확산되길 희망한다.

‘서로 사랑하라’ 외치며 누구보다 앞장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고 사랑을 베푸셨던 추기경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순절을 보람되게 보내야할지 명쾌하게 보여주셨다. 여기에 길이 있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절실히 목말라 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이다. 올 사순절에도 각 본당은 사순 저금통 모으기, 사랑의 쌀 한줌 모으기, 헌혈캠페인 등의 구체적인 나눔 운동을 전개한다. 올해는 추기경님의 추모열기에 힘입어 예년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사순시기에 이런 작은 실천이야말로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추기경님의 유지를 제대로 받드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감사와 사랑.’ 이 말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추기경님이 평생을 담고 사셨던 감사와 사랑의 정신이 우리의 희생과 노력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네가 가진 만큼, 많으면 많은대로 자비를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대로 자선을 베풀기를 두려워마라. 네가 곤궁에 빠지게 되는 날을 위하여 좋은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이다”(토빗 4, 8~9).

사순절은 은혜로운 시기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을 재인식하고 희생과 나눔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웃과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 이번 사순절 아니 평생 이 말을 삶의 지표로 삼고 추기경님의 모범을 따르면 어떨까. 그분께서 평생 바라고 이루고자 하셨던 감사와 사랑의 열기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도 작은 힘을 보태자. 그 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