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 퀴즈. 아빠가 퇴근길에 피자 한 판을 사들고 와 나눠 먹으라고 한다. 그에게는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가 있다. 삼형제는 각자 큰 걸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어떻게 나누는 것이 가장 공평할까?
요즘 방송을 보면 외래어가 난무한다. 특히 영어는 거의 모국어 취급을 받는다. 과연 사람들이 알아들을까 의심할 정도의 단어도 나온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일본어는 엄격히 규제를 받고 있다. 출연자가 실수로 일본어를 사용하면 사회자가 정색을 하며 고쳐준다. 모르고 넘어가기라도 하면 화면에 자막으로 수정된다.
그런데 일본어인데도 수정되지 않는 단어가 있다. ‘무대뽀’! 우리말로 알고 있는가 보다. 하긴 어느 국어사전을 보니 <경상도 방언>이라고 되어있다.
무대뽀는 일본어 ‘무철포’(無鐵砲)에서 유래된 말이다. 철포(鐵砲)? 임진왜란 때 이 땅을 짓밟으며 맹활약(?)을 한 바로 그 조총이다. 무대뽀는 ‘총이 없다’는 말로, 총 없이 전투한다는 뜻에서 무모한 행동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무대뽀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정치판은 무대뽀라는 말이 제격이다.
상식이 없고 배려가 없다. 대화도 없고 합의도 없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뇌까리지만, 이 말을 믿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본인들은 믿고나 있을까? 국민들은 눈에 안 보이는 투명인간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다시 서두의 돌발퀴즈로 되돌아가자. 피자를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을까?
저서 ‘정의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법철학자 존 롤스는 이렇게 제안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형에게 세 조각으로 나누게 한다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의 순서로 고르라는 것이다. 나누는 사람은 마지막에 골라야 하니, 공평하게 나누려고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나눌 지도 모르고 나눌 방법도 모르는 탐욕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 나라와는 달리 인간사회는 진리가 없다. 설혹 있다고 해도 무엇이 진리인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최종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진리가 없다고 해서 방치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찾아낸 지혜가 절차적 민주주의이다. ‘절차’를 거쳐 결정된 것이면 일단 그것을 ‘진리’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화와 경청이다. 내 말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한다. 그리고 심사숙고를 한 후 긍정할 부분은 긍정하고 부정할 부분은 이유를 들어 부정한다.
이번에는 내 말을 상대방이 경청하고 긍정하고 부정한다. 이런 대화의 과정을 거듭하여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합의를 준수하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았다. 제 목소리를 낼 입은 있지만, 상대방 이야기를 들을 귀는 없다. 세계 십 몇 위의 경제대국이라 뽐내지만, 정신 수준은 뒤따르지 못한다. 수십 층 아파트에 살면서도 머리는 초가집에 멈춰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일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도 이 말이다. 말하자면 국민들의 정신적인 표어, 즉 ‘국민정신’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민정신’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도 이렇다 할 ‘국민정신’이 안 떠오른다.
집안에 가훈이 있듯이 국가에도 드높은 ‘국민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좋은 이미지가 필요하다. 국민정신을 정하는 행사를 한 번 치르면 어떨까? 국민들에게 공모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응모된 것 중에서 몇 가지 후보를 선발하고, 그 후보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다. 국민정신이니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방송에서 이벤트로 정해도 좋지만, 아예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 때에 투표를 하면 어떨까?
여러분은 과연 국민정신으로 어떤 것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무엇을 제안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이 따뜻한 미소와 함께 떠오른다.
그립습니다 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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