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 자녀들 중 둘째인 릿다는 필자와 동갑이다. 큰어머님은 우리를 성당에도 함께 데리고 가시고 학교에도 같이 가게 하셨다. 그런저런 이유로 필자가 신부의 길로 들어서자 릿다는 수녀의 길로 들어서서 어릴 때부터 하던 잔소리(?)를 여전히 하고 있다. 유학시절 논문작업에 여념이 없어 잠시 연락 못하고 있었더니 이런 내용의 편지로 닦달을 했다.
“보고픈 신부님, 통 소식이 없어 한편 걱정스럽고 그래서 참다못해 필을 들었단다. 네가 수도자가 아니고 재속 신부님이란 걸 염두에 두었어야 했는데. 자주 잊어버리고 네게 요구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많아. 그러나 수도자이건, 재속 신부이건, 평신도이건, 향해야 할 길은 한 가지겠지? 즉, ‘성덕’, 성인이 되는 것, 그지? 바오로 사도께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성인’이라고 불렀다는 데 참말이야? 어쨌든 성인이 되도록 노력해 서로.”
그 뒤 진주복지원에서 일할 때에는 필자를 현장으로 데리고 가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직접 경험토록 했고, 영등포 창녀촌에서 일할 때에는 자신이 살고 있던 소박한 집을 보여주면서 뒷골목의 애환들을 소상하게 알려주곤 했다. 그런저런 현장 일을 하다가 진주 본원에서 여러 해 동안 원장으로 수고하더니 오십 중반의 나이에 이른 작년 가을, 오래 전부터 가길 원하던 방글라데시로 가서 적응기간을 갖고 있다. 그곳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우선 언어를 배우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모습을 가끔 편지로 알려주는데, 독자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세 개의 편지에서 발췌하여 지면이 허락하는 만큼 소개해 본다.
“ … 두 자매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는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동냥하는 아이들, 여인들이 즉시 우리 주위를 감쌌어. … 하여튼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보아왔던 경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고 사람들 역시 그러해. 그런데도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을 느꼈어. 마치 전에 언젠가 내가 살았던 땅처럼, 함께 살았던 사람들처럼. … 그리고 그 다음날 즉시 우리 자매들이 방문하는 병원을 방문했는데 말이 병원이지 마치 포로수용소 같았어. 더러운 바닥과 침실, 비위생적인 환경, 한 침대에 둘씩 누운 곳도 있고, 바닥 이곳저곳에 누워있는 노인과 아이들 … 더운데다 이런 환경에 있으면 병이 낫기는커녕 오히려 옮을 것 같은 느낌이더구나. … 나는 이 사람들 앞을 지나다니기가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구나. 내가 너무 부자라는 느낌과 내가 건강하다는 것이 … 그리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더구나. 그냥 이렇게 고통을 당한다는 자체 하나만으로 … 다음날은 자매들이 운영하는 진료소와 슬럼가를 방문했어. 가슴 아픈 현실을 보았지. 우리가 하는 것은 너무나 작은 몫이야. 그야말로 비 한 방울 떨어뜨리는 식이지. 그래서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원함은 주님께서 이 비 한 방울을 강으로 바다로 변화시키시도록 계속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단다.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니지만 … 신부님, 이렇게 나의 첫 선교지 시작을 적어보았어. 나만 알고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
“… 이곳 아이들의 가난하지만 맑은 눈망울과 미소를 보면 나도 기뻐.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든 아이들은 정말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느껴져.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구체적 표시라고 생각돼. 많은 아이들이 맨발로 다녀.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어도 누릴 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게 특징이지.”
“기차를 탔는데 우리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어. 기차가 떠나려 하는데 계속 창문으로 사람을 밀어 넣고 기차 지붕 위로도 계속 사람들이 올라가고 그래도 계속 사람을 밀어 넣는데 그야말로 전쟁 중의 기차 같았어. … 그래도 교통사고에 대한 얘기가 많이 없으니 신기하지? 사실 그 기차의 모습은 잊을 수 없어. 그 와중에 아이를 잃어버렸는지(당연히), 아이 찾느라고 부르짖는 아버지의 소리도 잊을 수 없고. 이런 속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기쁘게, 아니 즐겁게 살아. … 하여튼 시간이 많은 걸 가르쳐 주니 계속 인내심 가운데 살아가야지.”
릿다 수녀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현재 힘들어 하는 경제적 여건은 이보다는 많이 낫기에, 경제적 여건에 대한 우리의 기대 수위도 재고해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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