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부활절이 한 번 있는 것은 한 해에 한 번이라도 부활의식을 일깨우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라는 /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박목월(1916~1978)시인의 시 ‘부활절 아침의 기도’중 한 구절이다. 부활절이 되면 그 많은 시구 중에 이 구절이 기도문처럼 떠오른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자신을 여는 일로 출발해서 삶의 온갖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의 너름새와 자유를 체험하기 위해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리라.
자신에 묶여 남을 보지 못하는 삶은 좁고 닫힌 공간의 폐쇄적 고립이다. 그러면 부딪힘이 없어도 상처를 받는다. 현대인들의 상처는 고립의 상처에서 병을 키우는 일이 많다. 그래서 삶이 위협당할 때, 우울과 좌절에 시달릴 때, 실망과 체념이 엄습할 때 부활의식이 필요하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그것이 나를 이기고 무덤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내면의 경직을 깨치고 새로운 삶으로 가는 것이다.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무서운 이기심의 인간적 아집은 늘 투쟁과 단절을 불러 왔다. 박목월 시인도 부활절 아침에 가장 괴로워한 문제가 이기심이었는지 모른다. 완고한 돌문처럼 자기 안에 갇힌 우리들, ‘나’ 이외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는 모습들, 어디서나 자신만을 우뚝 세워야 성깔이 차는 행동이 마치 현대적이고 세련된 삶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오늘의 현실을 시인은 가슴으로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해인가 예수부활대축일 아침, 미주가 부활계란을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찾아왔다. 몇 해 전 졸업한 그는 수업 중에 느닷없이 울어버려 친해진 사이다.
“부활절이 다시 돌아왔구나!”
미주는 밝아 보였다. 졸업반 시절, 그는 ‘시에 나타난 가족의식’에 대한 수업 중에 질문을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연구실로 불러 미주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빠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자기는 어머니의 딸이라고 했다. 집안에는 늘 충돌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미주는 새 아버지와 오빠, 어머니까지 한패고, 자기만 유독 혼자라고 느꼈던 것이다. 어느 날 혼자 집에 있다가 우연히 어머니의 일기를 봤고, 내친김에 아버지의 일기장도 고의적으로 보게 됐다.
미주는 놀랐다. 새 아버지도 자신이 혼자라서 외롭다는 표현이 많았고, 어머니는 사막에 혼자 있는 느낌이라고 적혀있던 것이다.
“선생님도 혼자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아마도 미주의 눈에는 선생이 늘 화려하고, 사랑이 넘치게 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나는 ‘혼자’라는 말에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부글거렸지만, 그 상황에서 무슨 고백이나 연설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듬해 부활절. 미주는 카드 한 장과 부활계란을 가지고 왔다. 그의 카드에는 “‘혼자’라는 느낌을 트고, ‘함께’라는 의식으로 끌어 올리니 부활이 왔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미주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를 뻔 했다. 부활의식은 종교적 의미를 뛰어 넘어 가장 자신이 하기 힘든 벽을 허물고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종교적으로 해석해 볼 때, 부활은 우리 삶의 가난하고 복잡함을 이겨내고 저마다의 무너진 현실에서 눈을 뜨는 정신적 일어섬을 뜻한다. 즉, 복구의식이다. 그런 새로운 변화야말로 나를 부수고 우리라는 공동체로 이끌어 올리는 힘, 그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부활의 힘이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저마다의 작은 인내도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일이며, 그것은 곧 부활에 한발자국 다가서는 일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부활은 그렇게 무겁고 거대한 것만은 아니다. “이리오렴.” 우는 아이를 거리에서 안아주는 일, “미안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말하는 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몸을 움직여 먼저 손 내미는 사소한 일 등 부활은 ‘작은 마음’에서부터 눈을 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부활의 힘’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이 아닌, 생명이 꽃피는 계절에 찾아온다는 것은 많은 상징을 담고 있는 일이다. 박목월 시인처럼 완고한 돌문을 열고 나와 그분의 목소리로 나의 자만과 이기심을 불태워 버린 화형식이 우리들 마음속에도 조용히 부활사랑으로 타오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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