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만우절만 되면 소방서나 경찰서 상황실은 늘 장난전화로 몸살을 앓곤 했다. 그런데 금년 만우절에는 장난전화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허위신고에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엄벌효과도 있겠지만, 장난전화에는 이제 흥미를 못 느끼는가 보다. 만우절이란 서양의 ‘April Fool’에서 유래되었다. 이 날만큼은 거짓말을 해도 좋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데, 결국 평소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우면서 자란다. 거짓말을 자주 해서 마을사람의 신용을 잃고는, 급기야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이솝우화의 늑대소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전혀 안 하고 세상을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갓난아기도 반년이 지나면 부모의 관심을 끌려고 거짓 울음을 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거짓말은 이미 생활의 일부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에 몇 차례나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거짓말을 안 하고는 살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정직보다도 거짓말을 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거짓말이 없으면 사회가 성립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도 “그 원피스 전혀 안 어울리네요” “부장님, 노래 정말 못 하네요”라는 말은 좀처럼 할 수가 없다. 안 어울려도 “그 넥타이 너무 멋있네요”라는 정도의 거짓말은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한 센스이자 공동생활에서의 윤활유다.
‘거짓말도 방편이다’는 속담이 있다. 법화경이라는 불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집에 불이 났는데, 집안에는 불 난 것도 모르고 자식들이 놀고 있다. 위험하니 빨리 도망치라고 아버지가 외쳐보지만 놀이에 빠진 아이들은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들이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이 밖에 있는데, 빨리 나오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자 서로 차지하려고 급히 뛰쳐나왔다는 내용이다. 거짓말이긴 하지만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방편에서 했으니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석가모니가 말씀했다고 한다.
사회적인 입장이나 직업에 따라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영화배우는 늘 타인을 연기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한다. 연기라는 이름의 거짓말을 잘 할수록 명연기자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관객이 멋있는 거짓말을 요구하는 것이다. 내 직업인 선생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적어도 나 자신은 그렇다. 가르침을 준다는 이유로 때때로 적당히 과대포장을 하고 살을 덧붙인다. 선생님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열심히 노력해 성공하는 제자의 모습을 기대하는, 교육이라는 미명의 거짓말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다. 색깔이 색깔인지라 공산주의자의 일인가 싶었더니 다른 데에서 유래된 말이었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다음해 4월 1일, 코카콜라 회사가 ‘콜라를 마시고 우주에 가자’는 캠페인을 했다. 아무도 안 믿는 만우절의 거짓말이었지만, 이때부터 아주 빤한 거짓말을 코카콜라 병 색깔을 본 따 새빨간 거짓말(red li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새빨간 거짓말은 애교스러운 편이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정치가들이 아니겠는가? 지킬 생각이 없는 허풍 공약을 남발하고는, 당선된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 사과는 커녕 뻔뻔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정치가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처벌을 안 한다.
법률은 거짓말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사기죄, 위증죄, 무고죄, 문서위조죄, 통화위조죄 등 죄목도 많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허위사실유포죄라는 죄목이다. 전기통신기본법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거짓말을 하면 처벌하는 것인데, 거짓말의 대가 치고는 형벌이 무겁다.
인터넷에서의 거짓말과 선거에서의 허풍 공약,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쁜 행위일까? ‘허위공약죄’라는 범죄는 왜 없을까? 허위공약죄를 신설하면 어떨까? 선거법에 ‘공직 선거에서 공연히 허위 공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짓말 같은 세상은 과연 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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