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난 것들을 얼마나 먹고 있을까. 인구 4700만을 넘어선 지금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5%에 불과하다. 하루 세끼 중 두끼 이상을 남의 나라에서 농산물을 수입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수입 농산물은 선적과 운반, 하역 등에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자연 해충의 침식, 부패, 곰팡이 방지, 발아방지, 산도 유지 등을 위해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온갖 맹독성 농약과 중금속 화학물질, 방사능 등으로 범벅이 된 수입 농축산물을 하루 세끼 중 두끼 그것도 새참까지 곁들여 꼬박 꼬박 먹고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정부는 「쌀 산업 발전 종합대책」이란 것을 발표했다. 2004년부터 추곡 수매제를 폐지하고 공공 비축제를 도입해 쌀값정책을 점차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은 「쌀 증산 정책 포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생산과잉과 소비부진으로 쌀 재고량이 늘어난 상황에서(농민을 단순히 표로만 본 정치권이) 매년 4~5% 수매가를 올려 국내 쌀값이 국제시세보다 6~9배나 높다는 게 정부의 쌀 증산 포기 이유다.
하지만 경제논리로만 풀 수 있었다면 애초부터 쌀은 문제되지 않았다.
쌀은 국민생존과 직결된 식량 안보론, 농민을 도시빈민으로 전락시킨다는 농촌 파괴론, 통일 후 식량 사정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장기 수급론 등의 경제 외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힌 재화이다.
여기에다 또 하나 기막힌 일은 정부가 쌀 과잉에 따라 쌀 증산정책 포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5월 쌀 생산이 주목적인 새만금 간척 사업 재추진을 결정한 일이다.
결국 문제는 쌀이 아니다.
문제는 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정부의 비전이다.
한 톨의 볍씨를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 뿐 아니라 햇빛과 바람, 물과 지렁이, 미생물들과 자연 생태계가 공동으로 협력해야 한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계를 구현하는 이러한 농업이야말로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번성시키는 창조사업의 계속이다.
이러한 농업이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로 인해 침체된다면 농민들에게 생명의 일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돈벌이 중심의 약탈농업, 화학농업을 부채질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무너뜨리고 파괴하여 민족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나누기 위해 만든 쌀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지만 팔기만 위해 생산한 쌀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쌀의 위기는 생명의 위기인 것이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가이아의 평화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동료인류와 그리고 다른 모든 창조물들과 맺혀있는 섬세하고 역동적인 관계의 회로망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가 자연을 훼손하면 우리 스스로 환난을 초래할 뿐이므로 우리는 하나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살도록 되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존재의 법칙이며 이 법칙을 파기하면 모든 것이 비참하게 잘못되어 질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제 지구촌이 된 세계는 생태계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자기 중심적인 소유와 지배의 죽음의 문화에서 전 우주적인 나눔과 섬김의 사랑의 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생명존중의 영성으로 모아 진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셨으며 모든 창조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창조의 기본 메시지아래 온 생명계와 인류 가족이 실제로 형제자매적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의 길이다.
인화력, 협동력이 생명인 쌀 농사를 자꾸 멀리한 탓에 갈등과 반목 배신과 술수가 난무하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닐 지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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