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이는 다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그러나 순이는 아무말이 없다//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이쁘니?/채송화가 제일 예쁘지?/그래도 순이는 아무말이 없다/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꽃밭을 삥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거꾸로 박힌 포플러 막대기가!」(이오덕) 『꽃밭의 꽃들은 누구나 다 아름답게 볼 수 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죽은 것 같은 막대기에서 새 잎이 나고 그 생명의 경이로움을 지켜보는 순이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라고 LA에서 보낸 서수녀님의 글이다.
공평동에 있는 우리 수녀원에는 작은 정원이 있는데 우리 모두는 이 정원을 보배처럼 감사드린다. 6·25 때 이북에서 피난 오신 수녀님들이 처음으로 마련하여 「무료 시약소」에서 출발했던 곳으로 일본사람이 살던 집을 샀는데 너무 낡아 이층집으로 새로 지었었다.
정원에는 60년 된 감나무와 50년 된 석류나무도 있으며 작은 나무와 꽃들은 30여 종이 넘는다.
나는 여기 있는 갖가지 꽃들과 나무와 풀들의 자라나는 숨결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들은 새록새록 소리를 내지만 내 귀는 둔해서 듣지 못한다. 분꽃이 터지는 팍! 팍! 하는 소리며 채송화 꽃잎이 열리는 톡! 치는 소리도 못 듣는다.
나는 내 곁 누군가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기에 게을렀고 그의 이마에 송송 배인 땀방울도 눈여겨보지 못했다. 또 동료가 기쁨에 찼을 때 같이 기뻐하지 못했고 한 사람에 대한 고유한 사랑을 주기보다 무더기로 묶어서 책임없는 사랑을 한다.
『일이 많다 바쁘다 급하다』하며 주님께 인색한 내 자신을 사죄하고 오늘도 옷깃을 여미며 그 분의 경의의 초대에 기쁘게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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