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할 정치는 어디쯤 있나
이번 학기에 내가 세종대학에서 맡고 있는 강의에 이한동이라는 학생이 있다. 총리 이한동씨가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시점이라 강의를 시작하며 출석을 부르자면 학생들이 킬킬거리며 웃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이한동이라는 학생이 하루 나오고 하루 결석하는 식으로 학기초부터 영 성실하지가 않다. 출석을 부르면서 나도 한마디씩 할 수밖에 없다.
그 학생이 출석을 해서 '네'하고 대답을 하면 내가 한마디한다.
『먼저 시간에는 결석을 했던데, 자민련에 갔다 왔나?』 학생들이 와르르 웃어댄다. 이 학생이 결석을 한 날은 혼잣말처럼 내가 중얼거린다. 학생들이 들을 만한 목소리로.
『이한동이 국회에 나가느라 결석을 했나…』
학생들의 웃음이 또 와르르 이어진다. 이 웃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학생들도 나도 안다.
그렇게 학기초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외출에서 돌아와 무심히 바라본 TV화면에서는 국제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고층빌딩의 모습.
내 눈에 그것은 전쟁이었다. 전쟁 가운데서도 가장 극악한 아니 비열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었다. 전쟁에는 병사가 있고 전선이 있다. 그러나 이 살상에는 인간이 그토록 존중해 온 모든 추상명사들, 사랑 명예 자유 평화에 대한 말살이 있었을 뿐이다.
어린이와 노약자, 여성과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시민에 대한 이 무차별한 살상, 익명의 다수를 향한 아무 당위성도 찾을 수 없는 살해와 폭파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먼저 두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인간은 저토록, 저다지도 악의 화신일 수 있었구나 하는 공포였다. 그리고 하나는 탄식이었다. 인간은 저렇게 약한가 하는 절망감이었다.
테러를 가한 것도 인간이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인간이었다. 하나는 형언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진 학살이라는 이름의 악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평화였다. 인간의 이 양면성을 화면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랬다. 인간은 하염없이 약했다. 인간이 직립동물(homo erectus)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테러 현장에서 인간은 두 다리로 서서 뛰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지혜롭고(homo sapiens), 언어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homo habilis) 동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가공할 힘으로 테러를 벌인 것도 인간이었는데, 그 공격을 받은 다른 인간은 겨우 뛰어 달아나는 게 전부라는 이 아이러니.
학자들이 예단하고 있는, 서방이라고 일컬어지는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은 결국 이렇게 현실화되는 것인가 혼란스러워하며 그 밤을 보냈었다.
그러나 날이 밝고, 하나 둘 희생자들의 소식이 이어지면서, 나는 가슴 뜨겁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한마디였다. 결국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믿음이었다. 무역센터 빌딩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그 자욱한 공포의 연기 속에서도 『나예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라는 사랑으로 응결된 말들을 남기고 떠나갔다.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오늘이다. 이 엄청난 지구촌의 비극 속에서도 그러나 그냥 묻혀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어제 강의에 결석을 했으니 이한동군은 내일 강의에는 나올 것이다. 출석을 부르자면 학생들은 또 웃으리라.
여권의 개편과 개각으로 이어진 최근의 국내사태는 정치의 황폐화 이외의 그 무엇인가 싶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했던 안정남 장관이 국세청장에 취임하며 새벽 3시에 마니산에 올라 수없이 절을 올리고, 이기붕의 집에 불을 지르는 심정으로 취임을 했다는데 이르면 『엽기!』라는 말이 떠오를 뿐이다. 신임 장관의 변이나 그들의 프로필이 실린 신문을 눈을 흘겨가며 그냥 넘겨버린 사람은 나 혼자만일까.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 사람은 비스마르크였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치는 그것이 인간을 규정하고 확정하고 단죄하는 나날에 빠져있다. 생활을 지켜주고 질 좋은 삶으로 보정(補正)해 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정치가 어느 날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어 버렸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하나의 각성이다. 정치에 우리의 삶이 지배되고 있구나 하는, 이것은 오히려 깨달음이다.
어느새 가을인데,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릴 그날을 위하여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데, 국민의 마음을 읽고 헤아려야 할 우리의 정치는 지금 봄인가 가을인가. 인간은 사랑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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