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오래 된 귀중품에는 수녀원 입회 후 수련소에서 선생 수녀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작은 수첩이 있고 20년 넘은 검정색 헌 지갑이 하나 있다.
지금은 너무 헐어서 사용할 수가 없다. 떨어진 곳을 스카치테이프로 3년이나 붙였더니 가운데와 양옆이 찢어져 콕콕 찌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로 교통비를 받아서 가지고 다니는데 요즘은 헌 봉투를 잘라서 책 속에 넣고 다닌다.
이 지갑은 1980년 11월 10일,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아름다운 도시 짤츠부르크에서 남루한 옷을 입은 아가씨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 아가씨는 내가 기숙하고 있던 수녀원 성당에서 맨발로 돌 바닥에 꿇어 기도를 하다가 나를 보고는 돈이 가득 든 지갑을 주고 총총 사라져버렸다. 그 수녀원은 12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며,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나는 요즘 동성로 거리를 자주 걷는다. 이 거리를 걷다가 보면 젊음이 넘실대고 살아있는 숨소리를 느낄 수가 있다.
각종 색깔의 머릿빛을 자랑하는 젊은이, 넓은 바지를 입은 젊은이들, 가방 파는 아저씨도 그냥 서 있지 못해 손뼉치며 춤추는 이곳, 밤새껏 컴퓨터 놀이에 빠져있다가 아침에 떼지어 돌아가는 젊은이들, 무료하게 새벽부터 할 일 없이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 젊은이, 뒤질새라 소리 크기를 올려 옆집 앞집의 확성기와 시합장이 된 이곳에서 가슴으로 밀려오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다.
20년 전 짤츠부르크 아가씨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내 마음 속에서 살아 나오는 것이다.
오, 주님 나 자신을 고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나도 이 젊은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심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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