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전세계인이 주목할만한 모임이 열렸다. 유럽 40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유럽평의회와 유럽의회의 지원을 받아 열린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제1차 세계 총회」. 사흘간 계속된 총회에는 전세계 인권단체,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모임의 촉발은 6월 11일에 있은 미국 연방청사 폭파범 티모시 멕베이(33)에 대한 사형집행이었다(폭파사건은 95년 4월에 있었다).
세계 언론들은 이 총회를 「사형제도 추방을 위한 십자군」으로 묘사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발터 슈빔머 유럽의회 사무총장은 총회 기조연설에서 『사형제가 범죄예방을 위한 효율적 수단이라면 미국은 범죄가 없는 나라가 됐을 것』이라며 미국의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총회를 주최한 프랑스 「사형제도 폐지연대」(ECPM)의 미셸 토베 회장은 『합법적으로 인간의 처형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나쁜 형태의 고문』이라고 지적하고 『전쟁범죄를 단죄하는 국제 전범 법정에서도 최고형은 징역 30년형을 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미국 내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도 『사형제도가 인간의 편견과 실수, 고집 등에 의해 잘못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멕베이에 대한 사형 집행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형제 존폐 논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사실 국내에서 사형제도 존폐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최근 10년내 가톨릭에 의해서였다. 한국천주교회는 80년대 말부터 점증되기 시작한 사형제 폐지 여론을 수렴해 90년대 초 한국주교회의 차원에서 사형제 폐지 주장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모자보건법」 등 반생명적이고 반인륜적인 악법 철폐운동과 맞물려 「생명운동」차원에서 추진되던 당시의 사형제 폐지운동은 이후 교회와 사회가 주장하는 사형폐지 목소리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가 오판(誤判)의 가능성이다. 두 번째가 범죄 억제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원시적 보복 수단으로 반성과 회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오판(誤判) 가능성」이 한가지만으로도 그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1976년 미국내 사형제도 부활에 큰 역할을 했던 미 연방대법원의 블랙먼판사는 퇴임을 눈앞에 둔 지난 94년 『더 이상 사형제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엄정한 법집행을 주장하는 강경론자였던 그의 사형제 폐지 주장은 바로 『수십년간 사형제도의 공정한 시행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사형제도는 결코 공정하게 시행될 수 없다』는 양심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76년 이후 98년까지 486건의 사형선고 가운데 평균 7건 중 1건이 무죄로 입증됐다(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98년 11월). 일리노이주에서는 20건의 사형선고 중에 9명이 무죄로 판명났다고 한다.
많은 자료들은 사형이 무기형 보다 더 큰 범죄억제 효과가 있다는 증거 역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 우리의 현대사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이 「사형제도」가 악용되어 왔는가.
현재 법률상 혹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는 109개국이다. 해마다 2~3개 나라가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 30여개국에서는 제도상으로는 존재하지만 10년 이상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그 기능이 정지됐다. 사형제 폐지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大勢)다.
우리 정부가 사형제 폐지를 적극 추진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본다. 현 정부들어 아직 단 한명의 사형수도 집행되지 않았고, 세차례의 사면을 통해 9명의 사형수를 무기로 감형한 것은 분명 과거 정부와 다른 자세를 엿보게 한다. 법은 있지만 사실상 운용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아직 사형제 존속을 주장하는 국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폐지를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헌법재판소는 지난 96년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시대상황이 바뀌면 사형은 폐지돼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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