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일이든 납득할만한 설명을 들어야 속이 시원한 존재이다. 특히, 엄청난 어려움을 당할수록 설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 땅에 살던 「땅의 백성」(민중)도 그런 필요성을 절감했다. 끝없는 수탈, 폭력적인 왕권, 잦은 전쟁, 그리고 로마의 압제에 지칠대로 지친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장차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실 '새 세상' 뿐이었고, 현재 겪고 있는 재난은 새 세상이 곧 시작되리라는 징조로 간주되었다. 사실 그런 식으로라도 설명하지 않으면 끔찍한 고통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시대에 팽배해있던 종말 기대를 흔히 종말-묵시 사상이라 부르고 거기에 문학적인 틀을 입히면 묵시문학이 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다니엘서와 요한묵시록이 있다.
그렇다면 세상이 끝장나기 전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까?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하지만 묵시문학에 나타난 징조들은 『황폐의 흉물이 서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마르 13, 14)이나 『666이라는 낙인이 오른손이나 이마에 찍힌 사람이 나타나면…』(묵시 13, 18) 등 매우 추상적이라 현실 세계에서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그래서 『단군 상이 교정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이나 『초등학교 6학년 6반 6번을 조심하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있을 정도이다.
무역센터 테러 사건 이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들먹이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거인 둘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거든 종말이 시작된 줄 알아라』는 식이다.
진정 종말이 시작되었을까? 곧 3차 대전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할까? 과연 그럴지, 한번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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