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나는 농사일
먹거리를 직접 키워본 사람들은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고추 한두 포기를 키우는 일에도 많은 정성이 드는데, 하물며 우리가 매일 먹는 수많은 종류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있겠는가. 옛날처럼 그것들을 모두 스스로 알아서 조달해야 한다면, 엄청난 수고를 한다해도 우리의 먹거리 문화와 일상생활의 품질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먹고사는 먹거리를 모두 직접 생산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의 90% 이상이, 농사를 짓는 10%가 안 되는 분들의 수고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들은 신선한 농산물을 먹어야 살 수 있고, 그것을 E-Mail을 주고받듯이 컴퓨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어느 곳에 어떤 양질의 농산물이 있는가에 대한 정보는 쉽게 입수할 수 있겠지만, 농사를 짓는 일도 농산물을 저장하고 운반하는 일도 모두 사람들이 직접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기쁨을 가지고 성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거나 노력하여 매입한 농토에서 온갖 정성과 힘을 동원하여 지은 농산물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자녀 교육까지 가능해야 한다. 제 값을 제 때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농사짓는 일을 주식투자 하듯이 투기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일정한 농토에 일정한 힘을 들여 일정한 농사를 지으면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어야 한다.
필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은 공부를 좋아하여 어렵게 만학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 천 평 남짓한 크기의 밭에 무 농사를 계약 재배했다. 그러나 무값이 폭락하자 계약자는 매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할 수 없어진 그 제자는 한푼이라도 건질 마음으로 70만원을 받고 모두 인계하고 말았다. 농비도 안 되는 돈이다.
한 예를 더 든다면, 필자가 가꾸고 있는 텃밭의 원주인인 김 라파엘 형제는 9천 평의 농장에서 사과, 감, 자두 등 과수를 가꾸어 가족을 부양하다가 최근 들어 사과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인근의 친구 회사에 취직하는 선에서 정리하고 말았다. 농사일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고, 농협 빚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가 소득을 올리는 일에 급급한 사람들은 가능한 방법들을 다 동원한다. 도시 사람들이 저렴한 농산물을 원하면 비료와 약을 마구 사용하여 그것에 맞는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단다. 그렇게 생산한 사과나 쌀을 자신의 가족에게는 먹이지 않기까지 한단다. 안동교구 환경세미나에 갔다가 만난 농부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오늘날 우리 농촌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가에 대해서 필자가 이곳에 다 나열할 수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으리라.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이미 상당부분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우리는 좀더 합리적이고 장기적으로 효과를 가져올 정책을 마련하여 농사짓는 분들이 우리 모두의 생명을 생각하고 농사를 지으실 수 있도록 배려하고, 보장해주어야 한다.
농수산부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필자의 한 친구가 지난 20여 년 동안 근무한 과정을 보면, 근무자리를 최소한 10여 차례 옮긴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체적인 관리자는 되어도 어느 한 곳에 섬세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전문가가 멀리 내다보고 전문적으로 정책을 입안하여 지속적으로 시행해 나가도록 배려하는 일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이곳에 다 나열할 수는 없다. 하여간 농사짓는 일이 신나는 일이 되도록 우리 모두 배려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농약이 덜 묻은 양질의 먹거리가 우리 입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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