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으로 놀러온 일본 대학생들과 저녁을 같이 할 때였다. 김치와 굴비구이가 있는 저녁상을 차려냈을 때 한 여학생이 놀라며 물었다.
『한국사람도 밥을 먹나요?』
한국인이 벼농사를 주로 한 농경민족이라는 것도 이 여학생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상위에 놓인 젓가락을 묻는 것이 아닌가.
『이건 일본 젓가락인데…한국사람도 젓가락을 씁니까?』
이것이 오늘의 일본 젊은이의 모습이며 한국에 대한 이해의 깊이이다. 그들은 한국인도 밥을 먹으며 젓가락은 물론 숟가락까지 사용한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한일 과거사를 이해하기 바란다는 건 발상부터가 무리였다.
논란 끝에 고이즈미 쥰이치로 일본총리가 다녀갔다. 사무사(思無邪)라는 말 하나를 적어놓고.
그의 방한을 지켜보면서 한국과 일본에 있어 역사인식의 거리는 좁혀들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서대문 독립공원 방문이 빚어낸 연설문이 그것이다.
『서로, 반성해 나가면서…』냐 아니면 『반성해 나가면서 서로 협력하고…』냐는 어쩌면 지엽말단의 일일 수도 있다. 또한 즉석 연설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이 말의 실수나, 어순(語順)의 혼란에서 오는 오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총리의 연설문에 단 한점의 오해가 있다해도 그것은 일본 외교당국자가 해명하고 바로잡을 일이지, 상대국인 한국정부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일이 결단코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췌언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우울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일본 총리의 입에서 나온 「과거사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공동연구」라는 말이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들어가면서 저지른 남경대학살은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며 진실이다.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 남경대학살을 두고, 전연 날조된 것이며 그런 사실조차 없었다고 부정하면서 그들이 내세운 대전제가 「두 나라의 역사연구가로 하여금 연구해 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일본의 우익이 그렇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지금의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이다.
남경대학살. 남경에 진주하는 일본인들이 남녀노소 부녀자 노약자 어린아이를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이 학살은 일본군 스스로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한 이유로 알려져 있다.
얼마나 많은 시체를 웅덩이를 파고 거기 쓸어 묻었던지 나중에 그 위를 지나는 사람들은 마치 봄날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강물을 건너듯 땅이 쿨렁쿨렁 움직였다고 전한다. 학살의 만행도 가지가지여서, 심지어는 사람을 하늘로 던져올린 다음 그 밑에 총검을 놓아 떨어지면서 꽂혀 죽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 남경대학살을 두고 「양국의 역사연구가로 하여금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연구하게 하자」는 나라가 일본이다.
해방 50년도 넘어선 지 오래인 지금,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방문, 헌화를 했다는 것을 한일관계의 진전으로 이해하자는 여당의 말에 실색할 따름이다.
차라리 그것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신음하며 스러져간 애국열사 호국영령에 대한 모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이즈미 쥰이치로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두 달 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태평양전쟁 범죄자들의 위패 앞에 머리를 숙인 자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그의 행태는 우리의 영령들에 대한 모독이며 도를 넘어서는 농단이다. 선조들은 이 못난 후손을 둔 우리들을 생각하며 차라리 가슴을 쳤으리라.
교과서문제로 대일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때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차라리 국민감정을 더욱 부추기고 이용하려 했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전략이라도 있어야 했다. 필요할 때는 대일감정에 휩싸인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가 일장기를 불사르는 것을 방관하고 조장하듯 하다가, 아무런 납득할만한 해명도 설득도 없이 총리방한을 허락하는 식의 외교, 그러니 국민은 더욱 허탈하다.
이제는 우리들부터 과거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를 지렛대로 삼아 오늘을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어느 언론의 논조에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한다. 과거를 왜곡 미화하려는 일본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모르는 일본인이 자라고 있다. 아니 이미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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