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이덕무가 동리 사람들을 위해 지은 수신책을 보면 『밥을 먹을 때 씹는 소리를 내지 말고, 신 뒤축을 꺽어 신지 말고, 어른이 드나들 때는 반드시 일어서고,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배꼽 위를 올려다 보지 말라』 등등 자세하고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가문별로나 서당별로 수신책을 정해놓고 예닐곱살 때부터 가르쳤다. 어릴때부터 인격체 교육에 열성을 다해왔던 우리나라다. 그래서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웠던 나라다.
이런 점에서 한국 청소년들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꼴찌라는 유니세프의 최근 조사결과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어른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응답이 13%로 17개국 평균 72%에 훨씬 못미치는 꼴찌이며 「어른들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0%로 평균 2%의 열배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깝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존경은 높이어 공경한다는 말로 놀라움이나 경외심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현상이나 능력을 체험할 때 자신의 미소함을 느끼고 동시에 자신을 초월하는 그 대상을 닮고 싶고 희망하고 싶을 때 우러나오는 마음인 것이다.
어릴 적 소나기 뒤에 무지개가 찬란히 피어나면 그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단풍이 들면 형형색색의 그 아름다움에 놀라워하며 사색했고 겨울 서설이라도 내리면 무언지 모를 신비로움에 휩싸여 효자 충신을 소재로 한 할머니의 구수한 옛 이야기로 온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 뒤에 이런 세상을 만들어준 창조주를 찬미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스승들을 존경했다.
지금 우리는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과학적 분석 아래 당연한 자연현상이요, 뭐 그리 흥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으로 치부되고 있지 않은가.
분석하고 조직하고 정복하고 통제하고 비신성화하는 기계론적 사고에 물든 탓이다.
16세기 이후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종교와 자연의 영역을 별개로 보기 시작한 인간중심적 세계관은 철저한 비신화화로 무장하고 어릴 적 동경과 그리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자신의 세계에서 배제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개인주의, 물질에 대한 집착, 과학지상주의, SF 공상과학영화로 대신해 버렸다.
결핍의 빈자리를 못견뎌하는 현대사회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제껏 누려보지 못한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의 습득과 함께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어른들의 거친 이야기 속에 밴 인생철학도, 창조질서 속에 담긴 하느님의 계시도 잃어버렸다.
그리워할 것도 동경할 것도 없는 사회, 필요하면 과학과 물질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사회 속에서 존경심이 자리잡을 곳은 없다. 유니세프의 조사대상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최단시간에 빨리 산업화, 과학화를 이룬 나라였다는 것은 이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교회 역시 이러한 현상을 그대로 앓고 있다. 뜨겁지 않은 전례, 피상적인 성사, 토착화되지 못한 교리, 체험이 없는 신앙생활 등 무의미와 공허감이 확산되고 있고 그로인해 그야말로 가슴이 차가워진 냉담자들이 늘고 있다. 존경심의 마지막 대상, 마지막 그리움의 대상은 하느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연 현상의 놀라움 속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읽었기에 하느님을 두려워 했고 예배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종이 상전을 두려워하는 공포가 아니라 자녀가 어버이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하는 마음이었다.
교회는 신앙과 희망에 머물기 위해서는 성령의 일곱가지 은사 중 두려움의 은사(Donum timoris)를 간구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 두려움 곧 하느님에 대한 경외는 우리에게 세상 모든 것을 사랑어린 존경의 눈으로 보게 만들어 준다.
존경심이 없는 사회는 그리움이 없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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