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일이다.
당시 극심한 가뭄과 내전으로 「천형(天刑)의 땅」이라 불렸던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역시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수단을 방문한 적이 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본부캠프를 두고 4박 5일씩 두 나라 국경을 드나들며 소말리아의 기아 실태와 수단의 내전상황, 가톨릭 교회의 현황 등을 취재했다. 물론 당시 신문사가 모금한 소말리아 구호금을 전달하고 양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세계 각국 구호단체들의 활동상을 리포터하는 것도 주요 목적이었다.
수단 방문 첫째날로 기억된다. 내전으로 인한 사상자 수용소와 그들이 말하는 「결핵요양소」라는 곳을 방문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와 몰려드는 파리떼를 헤치며 겨우 둘러본 그곳의 참상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우리 나이로 16세였던 한 결핵환자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살가죽만 남은 몸에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오그라붙은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로 낯선 방문객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그 소녀의 모습은 더 이상 산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당시 취재기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절망의 끝에서 생기는 뻔뻔스러움. 그렇다. 정작 무서운 것은 가난이나 남루함이 아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생겨나는 뻔뻔함이다』
며칠전 모 일간지에 실린 한 컷의 사진은 그때의 몸서리를 다시 느끼게 했다. 너무 커서 금새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하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에 가득찬 큰 눈망울, 헝클어진 머리, 동그란 얼굴에 가득 패인 파편 자욱들….
미군기가 떨어뜨린 폭탄의 파편에 얼굴을 온통 다친 일곱 살의 아프가니스탄 소녀. 두려움과 애절함이 가득한 이 소녀의 클로즈업된 모습은 전쟁의 참상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활동 중인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관계자들은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최근 20년간의 난민구호사에서 최악이라고 전하고 있다. 내전과 한달째 계속되고있는 공습으로 약 460만명의 아프간 난민이 국내외를 떠돌고 있다고 한다.
유엔은 지난 1일 아프간에 대한 원조를 당장 재개하지 않으면 올 겨울 9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식량 수송을 위해 공습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유엔아동구호기금(유니세프)도 겨울전에 충분한 식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프간 어린이 10만명이 아사(餓死)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은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난민들은 추위를 막는데 필요한 연료를 구하지 못해 무차별적인 동사(凍死) 위험에 노출돼 있다. 미군의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도 속출하고 있다. 미군 당국은 부인하지만 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미국은 폭격 이전에 민간인 보호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혹한이 닥치기 전까지 가시적 성과가 없으면 장기화할 전망이 높다. 한마디로 전쟁의 끝이 안보인다. 그만큼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보듯 뻔하고, 아프간 난민사태는 세계에 또 다른 분쟁과 소요의 불씨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구호처럼 대테러 응징의 정당성만 외칠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고 가난한 나라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같은 빈곤을 퇴치하는 것이 테러를 막는 길이라는 사실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요즘 어설프게 반전논리를 폈다간 '왕따'당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최근 뉴욕에 거주하는 한 지인(知人)이 전해준 이 소식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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