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매년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내면서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영원한 생명을 동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위령성월을 맞아 우리는 지상에서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영원으로 이어짐을 깨달으며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명예와 권력의 소유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되는 거룩한 순간이다. 그래서 고래로 막강한 권력과 끝없는 재물을 가진 자는 영생을 꿈꾸며 불로장생의 명약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궁구하는 철학자들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심오한 철학의 세계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인간의 운명으로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늘날 첨단 과학의 발견으로 생명의 신비가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으며 인간 생명을 복제하는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해도 결국 하느님의 창조 신비를 찬양할 만큼 인간의 생로병사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 뿐만 아니라 죽음의 신비에 관해서까지도 이미 그 모든 해답을 받았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고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잠시 죽음에 굴복한 듯했지만 마침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인류에게 사랑의 선물로 전해주었다.
위령성월은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다시 한 번 굳게 확신하고 죽음을 준비함으로써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거룩한 시기를 맞아 특별히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이 하루속히 정화와 단련의 시기를 마치고 하느님 나라에서 영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이며 사랑에 바탕을 둔 친교와 나눔의 행위이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와 함께 특별히 자신의 삶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선행을 권고 받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는 그저 현세적인 가치에만 모든 지향을 두고 이기심과 질투와 욕심으로 가득차 있다. 영원한 생명의 가치에는 눈을 돌린 채 그저 편안하고 안락하게 온갖 쾌락과 편의를 누리기 위해 분주하다. 온갖 테러가 난무하고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은 권력과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 때문에 희생되고 있다.
위령성월은 죽음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생명과 삶을 향해 나아가는 때이다.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와 열렬한 기도로 이 한 달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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