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테러와 전쟁관련 보도를 통해서 우리는 이른바 '미디어 제국주의'와 「정보 제국주의」를 실감할 수 있었고 뉴스를 중심으로 한 국가간의 정보 유통이 미국을 비롯한 몇몇 강대국에 의해서 독점, 유통되는 현실도 체험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국언론의 테러와 전쟁관련 보도태도가 어떠했는가를 다시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테러가 발생했던 지난 9월 11일 밤10시10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TV 3사는 앞다투어 스퍼트 자막보도를 처리한데 이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철야로 뉴스특보를 내보냈다. 다음날인 12일에도 종일방송을 통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로 비스듬히 돌진하는 비행기와 화염을 내뿜는 모습, 400m 상공에서 허공으로 낙엽처럼 흩날리며 뛰어내리는 사람들, 무너져내리는 빌딩과 아우성치는 거리의 사람들을 영화장면이나 컴퓨터그래픽의 합성그림처럼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사건현장의 상보를 전했다. 우리나라 TV방송은 미국 CNN을 연결해서 그대로 중계하는데 바빴다. 결국 우리 TV는 미국 테러보도에 있어서 미국 현지 TV 보도화면과 그 논조를 그대로 따르는 미국식 보도로 일관했다. 우리의 시각으로 테러사태를 보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미국 CNN의 화면을 중계방송한 흉내쟁이 앵무새 노릇을 한 셈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TV는 마치 CNN의 중계국이나 네트워크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우리나라 TV 3사가 미국 테러보도에 있어서 미국의 시각과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의 정의를 대변하다보니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파적이며 미확인 보도와 추측보도가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3자의 입장에서 이슬람권과 서구를 객관적으로 보고 사태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데 균형을 맞추지 못했으며 도움도 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보도로 한쪽의 정보만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슬람권에 대한 편견과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었고 우리의 입장에서 미국 테러사건을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갖는 사건인지를 살펴보기보다는 미국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테러가 발생하게 된 근원을 따지고 이해하려는 근본적인 모색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주장만을 들고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한 잘못을 저질렀으며 보복전쟁을 부추기는 미국언론의 하수인 노릇을 톡톡히 했을 뿐이다.
국내적으로는 「이용호 게이트」와 「남북 장관급 회담」같은 굵직한 뉴스가 단신으로 처리되는 국내뉴스의 진공상태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전통적인 신문, 방송매체로부터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영상정보 분야에까지 서구의 미디어 제국주의가 팽창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미디어 식민지화로 가는 길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TV방송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엄청난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도 보도수준이 이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보도정신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처지에서 세계를 볼 수 없는가? 라고 묻고 싶다.
돌이켜보면 이번 미국 테러사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제뉴스 보도가 미디어 식민지화의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다.
미디어 생산물의 침략적 성격은 단순히 경제적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식민주의의 한 형태로 온 국민의 문화와 의식수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미국언론을 철저하게 베끼고 있는 한국언론에 대한 성찰과 한국언론의 자주성 확립을 위한 대안을 우리사회의 맥락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성찰없는 언론은 한낱 길든 앵무새에 불과하다.
세계는 빠르게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형성되고 있는 지구촌의 유일한 통로는 미디어이다.
이제 방송도 서구 제국주의 시각을 통해서만 비춰졌던 이슬람 문명권의 역사와 종교, 문화와 정치경제를 다각도로 조명하려는 노력을 통해 미국테러와 아프간 전쟁을 올바로 이해해야 하겠다.
뒤늦게나마 이달 들어 EBS 방송에서 15부작 기획시리즈 「이원삼의 이슬람 바로알기」가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언론도 테러의 야만성과 패권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끝없는 보복과 응징의 반복보다는 이해와 화해, 용서와 일치를 일구어내는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슬프고 부끄러운 미디어에 대한 고발장을 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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