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이 또다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몇 달전 안락사, 낙태, 대리모 등 민감한 생명윤리 문제들을 다룬 지침의 내용이 공개됐을 때, 특히 종교계는 그것이 안고 있는 심각한 윤리적인 부작용들을 지적하면서 격렬하게 비난했고 의협은 이러한 여론에 다소 물러 선 듯 했다. 하지만 결국 애초 내용에서 전혀 바뀐 것이 없는 상태에서 확정 발표됐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이 같은 자신감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다. 「의사」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특권적인 사회적 지위와 그 집단이 지닌 「일체감」과 「공동체 의식」(?)에 바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일반 시민들이야 어떤 경우에든지 몸이 아프면 매일 만나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리지침을 빌미로 생명의 수호자로서 의사들에게 거는 기대를 모두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고 인류를 영원한 생명의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언제나 「선의의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고 협력해왔다.
역사상 단 한순간도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가 언제나 살아갈 만한 모습으로 이어져온 것은 우리 사회와 세상 구석구석에 살아있는 이들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생명윤리 문제와 관련한 일련의 사회적인 토론과 논란의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문화를 압도하는 죽음의 문화가 횡행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의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간직하고 자신의 삶터에서 하느님이 부여한 생명의 신비를 수호하려는 가톨릭신자 의사들은 어디에 있는지 의아한 일이다.
문제의 윤리지침을 발표한 의협 임원진들 중에는 신자 의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들은 신앙과 현실의 직업 활동 가운데에서 때로는 깊은 고민도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앙의 가르침을 고수할 수 없는 역부족의 상황도 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해야 하는 본질적인 소명을 갖고 있는 교회는, 그리고 특별히 생명윤리 문제와 관련된 커다란 도전들에 직면해있는 한국 가톨릭교회는 이들 「선의의」의사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한국교회와 사회의 참된 복음화와 생명 수호의 사명을 완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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