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본당 단위의 교회는 오래 전부터 「공동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도시화된 지역의 본당 교회는 「익명의 거대 집단」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공동체의 성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본당 교회가 『한 마음으로 결합된 형제적 가정』, 『하느님의 가정』, 『형제애가 감돌고 따뜻이 사람을 맞아주는 큰 집』, 『신자들의 공동체』 또는 『성찬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평신도 그리스도인」 26)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당 교회를 공동체로 활성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것을 위해 「소공동체 운동」도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그 동안 본당 교회를 공동체로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1) 신심단체, 영성단체, 사도직 활동단체들을 통하여 본당 신자들의 익명 집단을 신자들의 공동체로 활성화하려고 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주로 연령, 직업(직장), 본당내외 봉사활동, 선교활동 등을 기준으로 조직된 단체들이었는데, 그러한 활동을 통해 본당 교회를 부분적으로나마 「공동체화」하려고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2) 그러나 그러한 본당 공동체 활성화 운동이 미흡하다고 생각해서 그후에 도입한 방법이 「소공동체 운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본당 교회에 이 방법을 적용한다고 할 경우, 소공동체들은 「구역」이나 「반」을 기초로 조직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과거 본당 교회의 「사무 행정적」 연락망과 같은 역할을 하던 구역-반의 단위가 「소공동체 모임」의 단위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구역-반의 소공동체 형성을 통해 본당 교회를 다소 '공동체화'하려는 노력입니다. 뜻깊은 제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문제입니까?
(1) 무엇이 공동체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구역-반만이 아닙니다. 본당 교회가 공동체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당 교회가 다소 공동체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구역-반이 먼저 소공동체로 활성화되어야 이렇게 활성화된 소공동체들을 통해 「익명의 거대 집단」인 본당 교회도 부분적으로나마 공동체적 성격을 띠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자동적으로 그렇게 본당 교회도 공동체로 변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상호 작용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 교회와는 무관하게 본당의 구역-반 소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논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구역-반 소공동체가 어떻게 본당 교회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뿐만 아니라, 본당 교회가 부분적으로나마 공동체로 변하면서 어떻게 구역-반 소공동체들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구역-반 소공동체는 공동체입니까? 고유한 의미에서 공동체는 아닙니다. 각 가정의 가족들 중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밖에 나가 있는 낮 동안에는 노인들, 어린이들, 직장에 나가지 않는 가정주부들만이 부분적으로 구역-반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저녁 늦게 돌아와 아침 일찍 나가는 가족들에게 가정은 사실상 침식을 제공하는 숙소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낮 모임에 거의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늦은 저녁에 별도로 구역-반 모임을 갖는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신자들의 「생활권 중심」은 이미 그들의 구역-반에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구역-반 공동체 형성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본당의 활동 단체들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구역-반 소공동체는 「지역적으로」, 활동 단체들은 「비지역적으로」 본당 교회의 공동체화에 협력한다는 말입니다. 본당의 활동 단체들은 지금까지 본당 교회를 공동체로 활성화하기 위해 구역-반을 초월해서 단체들을, 소그룹들을 형성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공동체적」 활동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가 그 대표적인 것이 아닙니까?
『단체는 필요에 의한 것이기에 일시적일 수 있으나 구역-반 공동체는 교회이기에 영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말에서 「구역-반 공동체는 교회이다」라는 표현은 애매합니다. 본당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역-반 소공동체만을 교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001년 6월 25~27일 청주 꽃동네에서 열린 소공동체 전국모임에서 「가톨릭신문」은 "소공동체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가능성은 보이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내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톨릭신문」 2001. 7. 8)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