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내 /묘비명을 쓸 때가 돌아온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자네는 /아니 벌써?하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다정하고 잔인했던 친구여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었고 /눈 덮인 길에는 핏자국이 찍혀있다(후략)』
일흔을 눈앞에 둔 어느 시인의 시(詩)다. 이제 이승을 마감하고 또다른 삶을 꾸려야 할 시기가 온 것으로 시인은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근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리 「유서쓰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만과 질주로 뒤덮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는 자기성찰 운동이다.
12월 16일 대림 제3주일은 주교회의가 제정한 자선주일이다. 전국 모든 본당에서 가난한 이웃을 위한 특별헌금을 실시하는 오늘 자선주일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히 기억하는 날이다.
자선주일을 기해 「묘비명」이라는 시를 인용한 것은 나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나눔의 문화가 보다 폭넓게 확산되어야 한다.
연말연시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나눔의 손길이 격감했다는 보도가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한적인 특별헌금이나 후원활동으로는 그만큼 사랑나눔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유서쓰기도 좋고, 유산나누기도 좋다. 1% 나누기나 푸드뱅크 사업에도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나눔방식을 개발하는 데는 물론 새로운 나눔방식을 전파하고 보다 효과적인 기부문화, 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인천교구에서 처음 시도됐던 「사랑의 쌀나누기」와 같이 사랑나눔에 관한한 우리 교회의 노하우가 적지않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캐럴송이 울려퍼지고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이 번득이는 이맘 때는 참으로 가난과 소외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계절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인 자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상기해봐야 한다. 가진 것은 물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 조차도 나누는 것이 참 나눔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어려운 이웃에게 전합시다」라는 제하의 제18회 자선주일 담화문을 발표한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그리고 특별하게 전해져야 할 우선적이고도 선호적인 사랑』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자선은 풍족한 가운데서 넘치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자 믿음의 시작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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