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명윤리의 원리들 가운데 「자율성 존중의 원리」가 있. 이는 곧 환자 자신의 삶과 행동에 관해서는 환자 스스로가 자유로이 결정하고 행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특히 자기 관리에 대한 권리까지도 포함하는 권리를 말한다.

의료 상황에서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환자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치료 과정에 동의해야 한다는 의미로서 환자의 치료를 위한 과정에서의 이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최근 몇 십 년간 이 조건은 전문적인 윤리 문제와 제도적인 정책의 문제, 더 나아가 법률적인 문제로까지 등장하면서 의료 제도 및 환경에 눈에 띄는 변화를 이루는데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조건은 환자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제시된 치료를 받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정보를 환자에게 알려주는 일, 환자에게 제공된 정보에 대한 환자 자신의 충분한 인식력, 환자의 의사 결정에 있어서의 자발성 그리고 환자의 정신적 및 정서적 능력이 함께 포함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윤리에서 이해되는 자율성 존중의 원리는 이처럼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도 있고 또 상황에 따라서는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는 환자 자신의 능동적인 권리로 해석되면서 환자 스스로의 존엄성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가 되기도 하며, 더 나아가서 의료 행위는 반드시 환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해 주는 긍정적인 권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임상실험 중에 있거나 아직 검증되지 않은 치료 방법들에 대해서도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자율성 존중의 원리는 생명윤리 분야에서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식과 관련하여 정자나 난자 공여라든가 혹은 대리 임신의 문제 그리고 안락사의 문제와 관련한 자율성 적용 및 수용의 주장은 생명의 존중과 보호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심각한 염려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자율 개념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의미의 확대는 자기 스스로가 법의 주인이 되며, 규칙의 주인이 되면서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을 뿐더러, 타인에 의해 조정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할 때, 자율성 존중의 원리는 생명윤리와 관련하여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핵심과는 전혀 상반되는 내용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 원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인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지 결코 인간 자신이 아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생명까지도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율성 존중이 자칫 인간이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를 배제하고, 또 하느님까지도 배격한다는 의미에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반생명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인간 이성의 자율은 반드시 신앙과 밀접히 협조하는 신율(神律)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는 자율성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