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면서 하느님의 은혜를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금년 7월 말, 빗속에 서울 시청 앞에서 안양행 좌석버스를 탔다. 시흥의 코카콜라 건물 앞 내리막길 정류장에서 40대의 지체장애자 한 분이 힘겹게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그 장애인은 "내 목발, 내 목발!"하고 크게 소리쳤다. 차에 오르는 순간 목발 하나가 차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운전기사는 라디오 소음 때문에 그 절규(?)를 알아듣지 못하고 마구 달렸다. 옆에 승객들도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차를 세워 달라고 거들어 줬다. 그제서야 운전기사는 "모르고 달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여러 번 사과하고 차를 멈추더니, 우산도 없이 장대같은 비를 흠뻑 맞으며 100m 쯤 뒤로 달려가서 놓친 목발 하나를 들고 숨가쁘게 차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지체 장애자는 운전기사를 뛰게 했으니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
그 때 차 속의 전 승객의 시선이 운전기사의 뛰는 모습에 집중되었다.
그 헌신적인 친절에 감동하여 약속이나 한 듯 승객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통상적으로 시간에 쫓겨 남의 일에 무관심 하는 현실에 반하여 자기 실수를 무조건 시인하고 행동으로 잘못의 사죄를 표시하는 시민이 아직도 있기에 이 사회가 건재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비는 오건만 마음만은 기쁜 하루였다.
"갈대가 부려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이사야 42:3)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감케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