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도 지구촌 곳곳에서 통합과 갈등의 흐름이 뒤섞이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새해 첫날 유럽인들은 단일통화인 유로화의 실용화로 「하나의 유럽」으로 가는 큰 걸음을 시작했다. 12개국, 3억 400만명의 유럽인들은 유로화의 성공적인 도입을 통해 자신들의 오랜 꿈인 하나의 유럽 실현에 성큼 다가섰다.
초기 화폐교환의 번거로움 등 불편함이 적지 않고 물가가 뛰는 부작용을 겪고 있으나 유로화 도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거대시장 중국의 가입으로 한층 확대, 강화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도 통합으로 가는 큰 흐름의 하나다. 13억 시장이 세계시장에 당당하게 데뷔함으로써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시장은 예측불가의 태풍 영향권에 들었다. 그러나 이는 나라간 장벽을 허물고 상품의 흐름을 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통합의 흐름이다. 대거 밀려들 외국 제품들로 인해 우리 제품이 위협받겠지만 자유무역은 피해갈 수 없는 대세다.
국제정치면에서도 통합의 기운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9월 11일 테러사태를 계기로 과거에는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이슬람국들이 반 테러리즘이라는 공동 관심사위에 협력의 틀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테러 외에 마약, 에이즈, 환경 등 인류의 공동 관심사를 토대로 협력의 분위기가 새해에도 이어져갈 것이다.
그러나 통합과 협력의 기운만이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 인도·파키스탄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등 다른 한편에선 갈등과 분열, 총성이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조지 W.부시 미국대통령은 2002년을 전세계 테러세력을 분쇄하기 위한 '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2단계 테러전에 본격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9·11 테러 주범으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을 단죄하는 외에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들도 함께 응징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라크, 소말리아, 예멘 등이 공격 대상 후보명단에 올라있다. 언제, 어떤 규모로 전선이 확대될 지가 국제적인 핵심 관심사가 됐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최근 설문조사를 통해 응답자의 61%가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국제 분쟁이 발생하고 전쟁 위기가 고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용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9%뿐이었다. 굳이 이런 조사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구촌의 갈등과 분쟁은 올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눈을 국내로 돌려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6월 월드컵이 열리면 전세계의 이목이 한국과 일본에 쏠리게 된다. 월드컵은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지구촌의 축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라는 양대선거를 치뤄야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양대 선거는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더 크다.
지난해 말 잇달아 터져나온 각종 게이트로 정부와 국민, 더 가진 층과 덜 가진 층, 여당과 야당 등 계층간 갈등과 불신이 깊어질대로 깊어져 있다. 여당 내 대권주자들끼리의 갈등과 대립 또한 통제가능한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본선에서 예의 지역감정까지 또다시 가세할 경우, 대통령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갈등과 분열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회한의 장이 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껏 기대를 모았던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물건너갔고 지금으로선 기약도 없다.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6?5공동선언의 이행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남북화해의 이정표라고 기대를 모았던 금강산 관광사업도 실패로 끝나가고 있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중단됐다.
이렇듯 새해 나라 안팎 사정은 통합으로 가는 큰 흐름과 갈등과 충돌의 기운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가톨릭 정신이 할 역할은 무엇일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해 81세의 힘든 몸을 이끌고 종교간, 문명간 갈등치유를 호소하며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녔다. 역대 교황으로선 처음으로 시리아의 이슬람사원을 찾아 미사를 집전했고 1000년 이상 가톨릭과 반목해온 동방정교회에도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선교사 마태오 리치의 베이징 도착 400주년을 맞아 중국인들에게 중국 고유문화를 훼손시킨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했고 호주 등 오세아니아에서 선교사들이 무리한 선교활동을 통해 원주민 사회를 파괴한 데 대해 사과했다.
『나의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는 가르침은 굳이 종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모두가 공존의 지혜를 배워야한다. 갈등의 시기일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게 가톨릭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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