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택시 타는 일이 피곤해졌다. 택시기사가 사회비평가가 되어 이일저일 논평을 해대는 바람에 정신이 혼돈을 일으킨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조간신문에서 무슨 게이트, 무슨 비리,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온갖 기사가 환멸을 안겨주는 세상에서 출근길 택시기사의 불평과 넋두리까지 들어줄 마음의 여유는 없다. 그보다는 밝은 얼굴로 인사라도 하는 기사의 경우에는 자연히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웃으며 내리게 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매사에 좁은 안목으로 부딪치며 사는게 싫어지고 격렬한 다툼도 고통스럽기만 하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이것은 김현승 시인의 시 「절대고독」 첫 연이다. 깊은 고독 속에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자아발견을 보여주는 이 시 한귀절이 이따금 나의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흔들리는 고단한 길에서 문득 「절대신앙」이라는 대명제로 나를 끌어올린다. 신앙 얘기만 나오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나의 미미한 신앙심에도 양심은 있어서 절대신앙의 고귀한 헌신에 대한 갈망은 있다.
언젠가 순교신앙에 대해 강론을 듣고 크게 깨달은바 있거니와, 순교란 바로 우리 모두가 순교자처럼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순교의 삶은 고통의 삶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의 삶, 몇십년 삶의 설계가 아니라 영원을 설계하는 삶이라 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평화』라고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인간사회에서는 작은 일에 서로를 상처입히고 개인 욕심과 눈앞의 이득에만 매여 비리가 난무한다. 국가적으로는 올해의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행사를 앞두고 세계인들에게 국위를 높여야할텐데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온갖 부조리한 행태와 어지러운 사회기풍이 두루 염려된다. 그 옛날 원시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 하여 지구가 평지로 뻗쳐있고 그 끝은 절벽이라 생각했던 시대도 있었다. 새처럼 높이 날고 싶은 인간의 갈망이 비행기를 탄생시켰고 우주에의 도전이 인공위성과 로켓과 달나라 정복의 꿈을 실현시켰다. 미지의 영역이 줄어든데서 오는 외경심이나 흥미 반감이 있을 수 있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왜소함을 알게 되고 광막한 우주 가운데 작은 일점에 불과한 우리 지구의 실체와 지상의 복잡다단한 인간생활에 어쩔 수 없는 연민같은 것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 때문에 오히려 오늘의 나 있음이 감격스러워지고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지상에서의 나와 남과의 관계도 한층 귀한 인연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전 우주의 시공간(時空間)의 역사를 꿰뚫어보는 장대한 작업에 몰두한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W. 호킹박사가 창출해낸 「우주의 나이와 인류의 나이」는 종교적 해석과는 별도로 매우 흥미있는 제시였다.
인류의 역사는 겨우 300만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대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축소할 때 즉, 150억년을 1년으로 압축하여 1월 1일 1시를 대우주의 탄생으로 잡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12월 31일 밤 12로 잡아 우주력(宇宙曆)을 만들어 보면 우리의 은하계가 혼돈 속에서 자취를 나타낸 것이 5월 1일 경이며 지구는 학생들의 가을 학기가 시작되는 9월 1일경에 생겨난다. 한때 이 지상을 주름잡았던 공룡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 나타나고, 12월 31일 밤 11시 55분경에는 사람들이 농사 짓는 법을 배운다. 그 막강했던 로마제국은 12월 31일 밤11시 59분 58초에 망하게 되며, 문예부흥이라는 문화사상 큰 사건은 11시 59분 59초에 일어난다"우리들의 문화사나 역사란 호킹박사의 우주 나이 계산에 따르면 정말로 마지막 1초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며, 대우주의 장엄한 역사로 볼 때 정말로 스쳐가는 일순간에 불과하다. 스쳐가는 일순간에 불과한 현대사 가운데 또 일순간에 불과한 우리들의 일생은 너무도 미미하고 너무도 애잔한 유한성으로 인해 가슴이 저릿해 오는 것이다.
종교는 자기초월의 수단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인간의 욕구 중에는 죽음이 예정된 생명체를 초월하여 보다 크게, 보다 영속적인 삶을 희구하는 강한 욕구가 있고 종교야말로 그러한 자기확대의식의 발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욕구가 개인의 욕망이나 아집에 얽매이지않고 인간사회의 아름다운 공동체의식에 연결된 사회 기여성이 중요하다. 그러한 인생관이나 종교관이야말로 짧은 인생을 보다 크게 영속적이 되게 하는게 아닌가 한다.
한편의 시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주는 따사로운 입김일 수는 있다. 오늘 아침, 문학적 미학으로 생명의 존귀함과 영원성을 노래한 김현승 시인의 시를 읊조리면서 사람만이 우주 속의 나, 세계 속의 나, 생명의 유한성을 초극하는 눈부신 빛임을 생각한다. 그만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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