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가진 마음의 환경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절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경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절제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많은 욕심을 내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씨를 뿌릴 땅을 잘 준비해야 하고, 씨를 뿌려야 하며, 자라기를 기다려야 할뿐더러, 자라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고, 마침내 적절한 시기에 수확하여 잘 보관해야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거부할래 야 거부할 수 없는 기정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발달시킨 문명의 힘을 동원하고 자연에게 폭행을 가해 많은 것을 얻으려 하고 있다. 가능한대로 많은 양의 수확을 빨리 얻어내려 애를 쓰고 있다. 북을 1분에 60번 움직여 베를 짜던 기계에서는 오가는 북이 눈에 들어와서 베가 짜여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한 직공이 맡은 기계가 한두 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계가 움직이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고, 어디에 탈이 나면 그가 직접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직조기계에서는 북이 1분에 700∼800번이나 움직이기 때문에 눈으로 관찰하기도 힘들다. 인간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속도이다. 이러한 속도로 베를 짜서 많은 돈을 벌어 무절제하게 흥청망청 살아보고자 하는 것이 현대인의 마음이다.
날로 발달하고 있는 컴퓨터를 통해 많은 정보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주고받으면서 많은 만남을 가지고자 하는 것도 현대인의 마음 중 하나이다. 필자와 같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사람도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던 십여 년 전에는 앞으로 컴퓨터 덕분에 상당한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찾아온 것은 여유가 아니라 끊임없이 바쁘게 하는 더 많은 일이었다. 컴퓨터를 통해 많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고 많은 일들을 처리해 나갈 수 있지만, 진정한 만남, 참된 작업의 수는 점점 줄어만 가는 것 같다.
우리를 참으로 우리 자신이게 하는 것은 무절제한 성취와 소유, 만남과 소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참으로 즐길 수 있는 절제된 성취와 소유, 절제된 만남과 소비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하고 소유한다 하더라도 내가 참으로 즐길 수 있는 성취와 소유는 그것과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루 24시간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조물인 우리들이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성취와 소유물의 수는 많지 않다. 이것은 만남과 소비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진정한 만남과 소비도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고, 요청되는 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쏟을 경우에만 그 만남이 참된 만남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급한 마음으로 만나면, 그와 옳은 만남을 가질 수 없다. 무절제하게 해치운 많은 수의 만남을 통해 참된 만남과 기쁨을 가질 수는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무절제하고 급하게 먹으면 탈이 나고 만다.
절제는 우리로 하여금 참된 성취와 소유, 만남과 소비를 하게 한다. 절제는 나의 하루가 24시간이고, 나의 몸은 눈과 귀, 팔과 다리가 각기 두 개이고 입은 하나이며, 두뇌는 한 번에 하나씩 인식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무절제는 이것을 거부하려 애를 쓰지만 거부할 수 있기는커녕 허망함과 참담함만을 가져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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