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이라는 재미있는 글이 있어 그 중에 일부를 소개한다.
『내가 침묵하면 생각이 깊은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낸 것은 참신한 아이디어요, 남이 생각해낸 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다…내가 교통신호를 위반한 것은 부득이 바쁜 일 때문이고, 남이 교통신호를 위반한 것은 교통도덕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잣대로 남을 철저히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개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민족, 종교, 인종, 계급, 성, 지역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져왔다.
작년 9.11테러사건 이후 미국은 아프간을 향해 반테러전쟁을 벌여 결국 탈레반 정권을 추출하였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라크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전쟁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에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테러를 행하거나 동조하는 나라들을 악으로, 반테러의 입장을 표명하는 쪽을 선으로 규정한 배경에는 「선악 이원론」이라는 그의 세계관이 깔려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세상에는 악의 무리들이 있으며, 미국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힘을 보전해 그 세력들과 맞서 싸우고, 필요할 경우 일소해 버리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소신이다. 따라서 그는 반테러전쟁을 악이 반드시 선에 의해 응징되어야 하는 「도덕의 전쟁」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반테러전쟁을 「도덕의 전쟁」으로 자연스레 전환시킬 수 있었던 근저에는 문화의 유럽중심적 태도가 깔려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도덕의 전쟁」은 『우리의 원대한 목표는 문명세계, 특히 미국의 문전에서 야만인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과연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서구인들에게는 계몽주의적 이성이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과 같은 이성적인 존재를 문명인으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비이성적인 존재를 야만인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인=선이요, 야만인=악』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성적이냐 비이성적이냐에 대한 판단은 따지고 보면 매우 주관적임을 알 수 있다.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이득이 될 때는 이성적이라고 말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가차없이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동양을 하등의, 열등한 존재로 인식한 서양의 세계지배 전략인 「오리엔탈리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양인인 내가 주체적으로 형성되기보다는 서구의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됨을 말한다.
몇 일 전에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500m에서 우리 나라 선수 김동성이 금메달을 미국 선수에게 빼앗긴 억울한 일도 따지고 보면 강대국인 미국의 약소국에 대한 편파적 태도 때문이다. 지방법원에 심판들을 고소했지만 결국 기각되고만 이번 사건은 『미국을 건드리면 테러, 미국이 나서면 선의 축』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였다. 또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국인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난하는 외국인들 중에 특히 프랑스의 한 전직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소비를 '야만스런' 행동이라고 주장한 이면에는 유럽의 자문화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문화 세계화는 미국의 문화적 제국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CNN과 같은 미국 글로벌 미디어가 세계인의 의식을 지배한다면 맥도널드와 같은 햄버거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는 세계인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 서구의 미를 기준으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가 사회적으로 급속히 확산될 정도로 우리는 그만큼 많은 면에 종속되어 아무런 저항없이 자연스레 서구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과거 한국교회가 겪은 박해의 경우에도, 그 원인이 한국전통문화와 천주교회의 문화 충돌 현상에 대해 복음의 순수성과 보편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동양문화 경시와 단죄라는 교황청의 자세 때문이었음을 최기복 신부의 논문이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문화에 대한 제국주의적 태도는 오늘날 언어사용이나 그 밖의 형태를 통해 교회 안에서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 총본부를 두고 있는 수도회가 세계적 회의를 할 때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의 서구적 언어만을 사용할 뿐, 실제적으로 숫자상 월등히 많은 한국 수도회 회원들의 참석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는 주변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동질화를 강요하고, 자기 문화의 잣대로 남의 문화를 저울질하는 문화 제국주의는 어쩌면 점점 심화되어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전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해감으로써 상대방을 더욱 교묘히 지배와 통제라는 권력을 추구하는 「제국」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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