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 졸업식이 거행되는 날은 교문 앞에 축하 꽃다발을 파는 장사들이 새벽부터 몰려와 장을 펼친다. 우리 집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치룬 통과의례건만 꽃다발더미를 볼 때마다 새삼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이 설렌다. 한동안 사회 분위기 상 졸업식이 썰렁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요즘은 졸업생들도 차분히 졸업식장에 참가하고 학부모도 많이 와서 기념촬영 하는 광경이 보기 좋더라고 어느 교수가 감회 깊은 듯이 말했다. 학업을 마치는 건 사회인으로서의 첫출발을 뜻한다. 사회에 나와서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어떤 일이 기다려 줄 것인지 미지의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 앞날을 축복해주고 싶다.
그러나 희망찬 새 출발을 하려는 그들 앞에 갈수록 취업의 문이 좁다는 현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 그것은 개인에게는 생계수단이 되는 동시에 자기생활을 향상시켜 가는 성취의 길이며 자유획득의 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위치는 각자의 직업을 통해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인의 성취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한편 그 노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에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직업을 존중하고 헌신케 하는 핵심인 것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은 첫 발걸음을 임의로 선택해서 뗄 수 없는 당혹감을 안겨준다. 취업이 어렵다보니 설혹 바늘구멍 같은 취업에 성공한다해도 자신이 일생을 걸고 정진해 갈 길에 합당한 일터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경황도 없는게 문제라 할 것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자신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합격가능성이 높은 학과에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심리로 선택하는 경향이 적지않은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취업 역시 우선 가능한 쪽으로 도전하느라고 물불 가리지 않아야 한다면 그 앞날이 매우 염려스럽다.
일을 한다는건 생활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이 기쁘게 참여할 수 있는 직업인가, 인재를 제대로 키워주는 곳인가 등등 신중히 검토해야할 면이 있는게 직업 선택이다. 또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일에 임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에 따라 보람의 크기가 달라진다.
17세기 크리스토퍼 렌 신부님이 성당을 짓기 위해 석공들이 땀을 흘리며 돌을 다듬고 있는 현장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당신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소?』
그러자 한 사람이 얼른 대답을 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고 이 고생을 하고 있지요』
다른 한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아름다운 성전(聖殿)을 짓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가족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을 의식하고 힘겨운 노동을 짜증내면서 하고 있는데 비해 또 한사람은 하나의 꿈이 서린 성스러운 노동에 영혼을 담아 기쁜 헌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병리 중 시급히 개선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중에도 젊은이들의 진로를 활기있게 열어주지 못하는 문제가 가장 가슴 아프다. 고등학교 시절엔 오로지 진학준비에 매달린다. 밤늦도록 학원공부에 매여 지내고 내신성적 때문에 학교는 그냥 시간 채우는 장소로 변했다. 쉬는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은 물론이요 수업시간에도 자는 학생들이 있고, 교사는 아예 체념하고 강의를 한다고 한다. 설마, 했으나 TV에서 그런 현장 보도에 접하고 나니 서글퍼졌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러나 설사 일부 학교라 하더라도 이렇게 자란 젊은이들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며 인생행로를 어떻게 개척해 갈 것인가. 그리고 그런 현상은 장차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경쟁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자기 직업에 만족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기쁨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불평과 짜증만 내고 투덜투덜 공치사를 늘어놓아 옆사람들을 마음 불편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 『그렇게 언짢은 마음으로 일하려거든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바꾸어서 말하면 『당신이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남들에게 폐가 될 뿐』이라는 뜻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원활치 못한 흐름이 있을 수 있다. 행여 그 막힘이 「나」로 인한 것은 아닌지, 나는 있을 곳에 있는건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이따금 조심스럽게 점검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이런 자기점검은 넓게는 정치인, 경제인, 교육자, 공무원 등등 사회에 영향력 있는 요직에 있는 사람일수록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봄에 교문을 나선 젊은이들의 사회 첫출발이 더 이상 취업난에 구겨지지않고 전공한 공부를 살려서 마음에 드는 일터를 찾을 수 있는 희망찬 사회이기를 바란다. 나라의 경제안정과 기업체의 합리적인 경영으로 일터에서는 보람있게, 가정에서는 즐겁게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소박한 행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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