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운수 대통이다. 「장」자리를 두 개나 한꺼번에 거머쥐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반장에다 구역장까지! 몇 년 동안 바쁘고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성당 반모임에 참석하지 않다가 앞서 한 반장들의 끈질긴 권유와 회유로 참석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형편이다.
돌아가면서 해야 한다는 말에 뺀들뺀들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어 반장을 맡았더니 웬 복인지 구역장 자리까지 내게 떨어졌다.
직장일이 바쁘다 보니 주일미사만 겨우 하는 처지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구역 식구들이 대부분인 마당에 구역장이라니. 수녀님은 막무가내였다. 한 번 해보라고만 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혼자 투덜투덜 댔다. 나보고 어쩌라고. 몸을 딱 둘로 나눠서 한쪽은 생협 일, 한쪽은 성당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에는 반장 구역장 교육을 받았다. 주교님의 사목교서를 실천해서 이루어야 할 사람들이 소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반장과 구역장은 교회의 핵심이며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의 기초단위가 가정이듯이 성당의 기초단위는 소공동체라는 말씀이다.
생활전반을 통한 친교 속에서 소공동체 식구들의 영성생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수녀님이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사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고, 죽을 쑤든 밥을 짓든 올 일 년은 맡아서 해야 한다.
퇴근 후 늦은 저녁, 아파트 통로를 오르내리며 판공성사표를 나눠주고 나니 1시간 20분이 걸렸다.
오늘따라 날이 추워 손이 시렸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앉아서 받았던 옛날을 생각하며 앞서 책임을 다한 반장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반장·구역장을 하다 돌아가신 영령들을 위한 기도도 절로 나왔다.
에라, 이왕 맡은 것,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억지춘향이 열녀춘향이 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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