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2월 25일부터 4일간 로마 교황청에서 개최되었던 제8차 생명학술원 정기총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40여 나라에서 10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이번 총회는 전체 일정이 세미나 형태로 짜여진 매우 바쁜 일정으로 움직였다. 총회의 주제는 「생명권의 기초로서의 인간 존엄성과 자연법」이었고, 여기서 발표된 내용은 주로 철학과 신학, 법학 등의 분야에서 생명윤리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자연법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교회의 전승에서 자연법은 사람들의 마음에 내재하는 법, 생득적인 법, 마음에 쓰여진 법으로 가르쳐 왔으며, 특별히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스콜라 철학에서는 이 자연법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면서 그 내용은 더욱 풍성하게 발전, 해설되었다.
가톨릭 교회가 자연법에 대해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내용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연법은 인간의 본성에 그 정체성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인간 이성의 법으로서 비록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그 뿌리를 갖는다 하더라도 타율적인 법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법은 어떤 행동 규칙과도 같은, 외부의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행동의 주체인 인간 자신의 본성의 요구와 그것으로부터 드러나는 의무들의 혼합 형태로 제안되고 인식되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자연법은 인간 본성의 요구와 의무를 실체화하는 관점에서 법의 형태를 지니며, 스스로 의무를 수반하며 동시에 가치를 함축하는 인간 본성의 진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연법은 인간본성의 「되어야함」을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법은 인간에게 법을 주고 심판하며 인간에게 구원을 위한 조건들을 부과하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법적인 규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 안에 이미 부여하였고, 또 그것을 통해 피조물들 상호간의 관계성을 갖게 하는 자연의 조화와 질서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 토마스는 자연법을 신의 의지에 기반한 명령이 아니라 이성의 질서로 규정하였다. 곧 인간은 그의 이성을 올바로 사용한다면 신적이고 창조적인 지혜와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법은 인간의 양심과 이성 안에 있는 영원한 법의 반영이 되는 것이며, 자연법을 따른다는 것은 이성적 존재인 행위자가 자신의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영원한 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생명의 실상은 생명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자연법적 인식을 거의 망각하면서 도구화되고 물질화되어 가고 있다. 생명복제의 방법을 이용한 장기의 생산, 난치병의 치료 등 화려한 언어의 휘장 뒤에 감추어지고 사라져 가는 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이 아닌가?
자연법은 인간 생명의 가치가 절대 수단으로 전락될 수 없음을 우리 본성에 호소한다. 인간 생명의 허약함이라든가 무방비에도 불구하고 인간 생명은 언제나 귀중하다.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인간 생명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에 가해지고 있는 온갖 종류의 폭력이나 해악은 당연히 비난받아야만 한다.
인간 배아의 파괴를 가져오는 온갖 형태의 연구나 조작, 안락사, 낙태 등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죄스런 사회구조들에 대항해야만 하는 우리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에 개별 인간의 모든 생명으로부터 최고의 존엄과 가치를 발견하라는 우리 스스로의 본성에서부터 울려나오는 요구, 곧 자연법의 요청에 귀 기울이는 일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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