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었던 여러 소원들 중의 하나는 안경을 써보는 것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안경 쓴 친구가 너무 부러워 어떻게 하면 눈이 나빠질 수 있을까 연구도 했었다. 연구 끝에 옆에서만 봐도 안경알에 동그라미가 몇 개 그려져 있는 친구 안경을 쓰고 다니기로 했다.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안경밖의 세상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순간, 넘어져서 안경은 깨지고 말았다. 아무리 해도 내 눈은 나빠지지 않았고 결국 안경 쓰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소원을 이제서야 풀게 되었다. 저녁에 신학원 강의를 듣는데 작은 글씨가 약간 흐릿하게 보였다. 드디어 신호가 온 것이다. 그 동안 잘 버텨왔는데…. 친구를 데리고 안경점엘 갔다. 몇 년 전부터 선배들의 안경을 써보며 보라색 아니면 빨간색 안경을 쓰겠다고 미리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쉽게 고를 수 있었다. 돋보기 같지 않은 테 중에서 좀더 젊어 보이고 야무지게 보이는 빨간 테를 골라 쓰니 웃음이 마구 나왔다. 안경 쓰고 싶은 소원이 50년만에 이루어졌구나 싶으니 재미있기만 했다.
안경점 직원이 돋보기 살 때 모두들 뾰로통해서 사는데, 이렇게 유쾌한 분은 처음이라고 이상하다고 했다. 『내 평생 소원이 안경 한 번 써보는 것이었어요. 하하하』
거울을 보며 어떻게 쓰면 더 예뻐보일까, 책을 볼 때와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편리할까, 이리저리 연구하며 써보고 있는데, 아들 녀석은 엄마가 할머니 같다고 한다.
『임마, 나이 오십이면 할머니지, 이젠 엄마가 할머니니까 잘 모셔라』
생협에서 함께 일하는 목사님한테도 드디어 내 안경이 생겼다고 자랑을 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심을 축하드립니다』
돋보기를 쓰는 게 어찌 기분 좋은 일이기만 하랴.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게 있어서 더 호들갑을 떠는지도 모르리라. 오늘 주일 미사 중에 드린 기도 하나는 이거다. 『주님, 제가 나이에 맞게 자연스레 늙어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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