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영국의 고등법원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숨을 쉬며 살고 있는 43세의 전신마비 여성 환자에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고 한다. 이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의식도 있고, 의사들도 앞으로 수 십 년은 더 살 수 있는 데다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고 진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 환자가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었다는 판단에 따라 그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이다.
생명은 당연히 의무라는 인식이 이렇게 생명은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의식으로 몰고 가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내 생명의 주인인가?』 『내 생명을 내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인간 생명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올바른 이성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해하는 인간 생명은 분명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의 위대한 선물이다. 성서가 말하는 것처럼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2, 7).
인간 생명의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영을 받은 것이고, 그분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도 귀중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동양사상에서도 마찬가지로 인간 생명은 경이롭고 신비한 것으로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임의적인 행위는 절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명이라고 부르는 명(命)이라는 것은 땅에서 그냥 솟아난 것이 아니고 바로 하늘로부터 인간과 이 세상 모든 것에게 주어진 것이다. 명은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 우주의 모든 질서를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따라서 천명(天命)으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은 절대적인 것이다. 인간이 임의로 조작하여 변화시키거나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명령은 천(天)이라는 절대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신성하며 특별하다. 따라서 이는 생명의 존엄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곧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하고, 깨달아 천명을 수용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의 뜻에 따라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약에 충실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혹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하는 일종의 신앙의 행위라고 말해야 한다.
생명은 분명 우리 인간이 만들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곧 우리는 생명을 살아갈 뿐이지 생명의 주인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으로부터 선사 받은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거두어지는 순간까지 지킬 의무가 있을 뿐이다. 이 생명은 고통스럽다고 해서 스스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타인의 생명을 파괴하거나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선사하신 하느님께 대한 도전이 아니겠는가?
고통스런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안락사적 사고가 횡행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선물로서의 생명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하나의 과제는 고통받는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일이다. 안락사로서 품위있는 죽음을 맞으려는 말기 환자의 생각이 죽음을 수용하는 가운데 품위 있는 죽음을 맞으려는 창조적 변화로 전환될 수 있기 위한 그리스도 신자들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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