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길모 주교가 4월 25일 제2대 인천교구장 착좌식을 기해 40여년간 맡았던 인천교구장 직을 떠나게 됐다.
지난 54년 28세 젊은 선교사로 바다건너 미지의 한국 땅에 도착 한국인 한국교회와 반생을 보낸 나길모 주교는 이제 70대 중반의 백발이 성성한 노사제가 되어 본국으로의 귀향을 준비하고 있다.
나길모 주교가 인천교구장을 맡으며 지낸 40여년은 6·25 전쟁이후 한국교회가 도약과 성장을 위해 전력투구하며 300만여 신자시대로 진입한 격변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나주교는 선교사 주교로서 한 교구의 수장을 맡아 교구 발전을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인천교구가 방인 교구장을 맞을 수 있도록 사목적 채비를 마련했다.
1961년 나주교가 교구장으로 부임할 당시 인천교구는 신자수 2만2000여명에 본당수는 9개에 불과한 상태였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인천교구는 2001년 12월 31일 현재 35만여명 신자에 80여개 본당을 보유한 교구로 성장했다. 자체 신학교도 마련했고 새천년기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교구 시노드를 성공적으로 치뤄냈다.
인천교구의 교세확장은 나주교가 인천교구장에 부임하면서 결심했던 중요 사목 계획중 하나였다. 전교활동을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성당으로 초대하고 신자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우선 본당수가 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성당건립을 위해 나주교는 교구장 초기시절부터 미국의 친지 지인들을 통해 후원자를 찾았고 재정마련에 늘상 노심초사 했다. 그같은 흔적은 나주교의 선교사 생활을 담은 책자에서도 여러번 발견되고 있다.
나주교는 무엇보다 사랑의 선교사로 불렸다. 명예시민증을 소유한 명실공한 인천시민으로서 마을버스 지하철을 이용하며 인천사람들과 함께 살아감을 자랑으로 생각한 선교사였다.
진솔하고 소박한 삶으로 교구민들에게 모범이 되기도 했던 나주교는 지금도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이용하고 국제전화를 공중전화로 해결하는 검소함을 보이고 있다.
신자들에게 자주 '열심한 기도생활과 전례생활 월 1회 고해성사'를 당부해 왔던 나주교는 그에 앞서 자신이 먼저 하루 3시간여를 기도에 할애하는, 기도하는 사제의 전형이 되어왔다.
한국교회의 변화 성장을 지켜보며 한국인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나주교의 40여년 선교사 생활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마지막 선교사 주교로서 방인 주교에게 교구장직을 물려주는 모습으로 선교사 임무를 마무리하고 은퇴후 삶을 고국의 지역교회에 봉사하려는 나주교의 삶이 한국의 성직자들에게 또 다른 귀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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