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만약 임산부가 교통사고를 당해 태아에 이상이 생겨서 낙태했다면 보험사로부터 사망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모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제기된 태아의 권리 능력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침묵의 인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여기 한 사례가 있다. 얼마 전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총격으로 임신중 사망한 최모씨 가족이 함께 숨진 8개월 된 태아에 대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국가보상을 신청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세차례 보상에서도 태아에 대한 보상은 그 전례가 없어 광주광역시장 등으로 구성된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심의위원회는 보상여부를 놓고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이 문제를 놓고 법률가들 의견도 엇갈렸다고 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문제인만큼 일반손해배상과 달리 태아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현행법상 모태로부터 완전 분리되었을 때 사람이 되고 권리능력은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태아에게는 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상반된 의견이 제시됐었다는 것이다.
민법상 출생전의 태아는 한국에서 아직 사람이 아니다. 또한 죽어서 출산된 태아에게는 예외적으로라도 사람 대접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형법의 세계에서도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판례와 통설은 사람의 출생을 제1단계 개방진통이 시작된 때로 보고 있다. 진통 개시후면 분만중에 있는 영아라도 이미 사람인 것이다.
이럴 경우 우스개 소리처럼 팔삭둥이로 태어난 아이와 8개월 된 상태에서 사고로 유산된 아이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경우로 양분되어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전반에 퍼진 생명경시 풍조와 거리낌 없는 낙태 분위기는 이같은 태아에 대한 법적인 권리규정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법이 권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 생명일진대 어떻게 소중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내에 생명인식의 기본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법률에 규정된 태아의 권리부터 출생이전 수정란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집을 짓는데 골조공사가 필요하듯 생명문화 창출을 위해서는 생명 기원의 시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기본 사안일 수 있다.
불거져 가고 있는 낙태 배아복제 실험의 한 가운데에서 태아의 권리능력을 법적으로 확대시키는 노력은 한층 가속화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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