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이야기
청소년 시절에 자주 듣던 이야기가 있다. 나를 업고 가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너무나 통속적인 비유가 되어 버린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감흥은 통속이 주는 평이함을 훨씬 뛰어넘기에 여전히 자주 인용된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바닷가를 홀로 걷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실의와 좌절에 빠져 모래 위를 걷다가 문득 외로움이 사무쳐 주님을 원망한다.
“주님, 어찌하여 제가 이처럼 혹독한 시련 속에 있을 때 저를 혼자 버려 두십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사랑과 자비의 주님이십니까?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언제 너를 버려두었느냐?” 그가 항변한다.
“모래사장 위에 발자욱을 보십시오. 저는 혼자서 이 황량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다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내가 너를 업고 온 것을.” 모래 위의 발자국을 자기 것으로만 여겼던 그는 그것이 맨발의 예수님 발자국인 것을 깨닫고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은 결코 고통의 면제를 통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은 고통을 함께 겪으심으로써 당신 사랑을 드러내신다.
그 절정은 바로 십자가의 고통이다. 인간에게서 자유로써 선택할 수 있는 죄악과 유혹의 일말의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유의 행사로 말미암은 고통을 대속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의 성업을 완수하는 것,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치유자 스스로 상처를 입어야만 하는 필연성을 일러 하는 말이리라.
또한 치유를 받아야 하는 상대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연민의 고통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리라. 예수님은 죄와 그로 인한 죽음의 운명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비참함을 보며 상처를 입으셨고, 나아가 손수 가장 혹독한 상처를 자청하심으로써 죄와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온전하게 이끌어내는 치유의 은혜를 베푸셨던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질병과 환난의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러한 주님의 치유의 방법은 고통을 덜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누군가 사랑하는 이가 혹독한 질병에 걸려서 오랜 기간을 고통 속에 머물러야 할 때, 나는 어떻게 그의 고통을 덜어줄 것인가.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하늘과 땅의 호흡
정호승 시인은 ‘태풍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우치는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난 뒤엔, 오랜 시간에 걸쳐 하늘과 땅의 호흡이 하나가 되어 무심할 때 비로소 씨앗이 마음을 움직여 꽃과 잎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말하듯 “모든 실패가 성공의 향기를 품고” 있기까지는 않더라도, 또 반드시 고통만이 꽃과 잎을 틔우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고통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 내가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 주위의 누구라도 치유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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