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봉사(奉仕)」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대선을 앞둔 여야 각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사람들 모두가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 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있고, 대학에서도 고등학교 시절 봉사활동을 점수화해서 신입생 선발을 하고 있는가 하면, 병원을 포함한 여러 사회단체들에서의 자원봉사 활동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봉사가 곧 사랑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우리사회의 모습은 일단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하는 이런 봉사활동 바람은 그 내용이나 형태에 있어서 반드시 경계해야할 몇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금년에, 자칫 봉사가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적 욕망이나 채워주는 도구로 쓰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꼭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약속을 무분별하게 해대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끌어모은 사람들을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이들에게 여러 가지 불법적인 일까지 시키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성숙한 미국같은 나라에서 하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내는 모양이지만, 내용은 제쳐놓고 형식만 본받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둘째는, 봉사활동이 마치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고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하는 특별활동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부 사회단체의 활동이나 이를 부추기는 매스컴의 보도행위다. 한때, 장관이나 국회의원 부인들이 단체로 사회복지 기관을 방문하는 장면이나 이상한 복장을 하고 모여 앉아 위문품을 포장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여주곤 했던 일등이 바로 그것이다. 숨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얼마나 잘못하는 일인지 금방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셋째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을 필요이상으로 치장해서 부각시키는 일이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별도의 복장이나 자원봉사자 표지같은 것은 기본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쉽게 식별해서 도움을 청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유별난 복장이나 화사한 화장보다는, 평범하면서도 친근감이 가는 복장이나 외모를 갖추도록해야 하는데 왠지 요즘 우리 나라 자원봉사자들은 스스로도 조금은 남과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네 번째는, 자원봉사가 상업적으로 악용되는 일에 대한 우려다.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돈버는 재주가 뛰어난 재벌들에서 운영하는 기관들 중에서는 자원봉사자를 순수한 봉사로서의 의미가 아닌 노동력의 일부로 생각하거나 적어도 그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에 열을 올리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봉사자들을 위로한답시고 이들을 위한 갖가지 오락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든지, 봉사 활동의 전문성 터득이라는 이유로 이들 중 일부를 해외여행까지 시켜주는 일을 하는 것 등이 그 좋은 예다.
우리말 큰사전을 보면, 「봉사」라는 낱말은 「남의 뜻을 받들어 섬긴다」는 말과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한다」는 말로 풀이가 되어 있다. 말하자면, 봉사라는 행위는, 그것을 통해서 행위자가 다른 어떤 보상적 성격의 명예나 이익을 얻어서는 안되며 그 행위의 직접적인 상대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로 인한 이익을 보아서도 안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저런 비뚤어진 성격의 봉사활동은 이제 조금씩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려가야 할 진정한 자원봉사활동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과거 우리 사회의 관행이 오늘의 무법과 무질서의 사회상을 만들어 놓았듯이, 진정한 봉사가 악용되고 오해받음으로써 서로 돕고 사는 봉사의 미덕이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봉사를 단지 사회생활을 위한 미덕의 차원이 아닌 신앙 차원의 실천적 덕목으로 보는 우리 가톨릭의 전통이 지금 다른 어느때 보다 소중하다고 할 수가 있다. 봉사(디아코니아)를 회개(베타노이아)와 친교(코이노이아)와 더불어 신앙생활의 3대 덕목 가운데 하나로 삼았던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범이라든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하라」는 성서적 가르침, 그리고 봉사직을 왕직이나 예언직과 더불어 가톨릭 평신도들의 필수 사명으로 규정한 현대 교회의 사목적 가르침은 봉사가 어떤 행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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