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반성을 해야 한다. 사람은 약하고 능력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뜻한대로 일이 잘 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양심이 있다. 그러니까 반성을 하게 되고 반성을 해야 한다.
반성은 개인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한 공동체라든가 심지어는 교회까지도 공직으로 반성을 하는 수가 있다. 특히 역사 안에서 이러한 성찰을 하게 된다.
최근에 바티칸 교황청이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가톨릭 교회가 역사 안에서 오류를 범한 점들에 대해 반성을 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일제 때 우리나라 천주교회가 민족의 독립운동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비롯한 오류들에 대해 공식으로 반성을 했다.
하느님의 진리는 절대적인 차원에서 변하지도 않고 오류도 없다. 그러나 교회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상대적인 차원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반성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오히려 떳떳하다. 그리고 지난날의 잘못을 갚을 만큼 새로이 잘하는 일도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기미년 독립운동 민족대표에 가담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신자인 안중근이 독립군의 신분으로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격을 가한 것도 변호해 주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 안중근의 민족애에 따른 거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또 70년대와 80년대에 천주교 고위 성직계와 정의구현사제단이 이 나라의 군사독재에 대해 가장 앞장서서 저항한 사실은 지난 시대의 유감을 갚고도 남을만했다.
지금도 한국의 국민 대중은 사회 시국에 대한 천주교의 자세를 주목하고 신뢰를 보내고 있다. 아울러 오늘과 내일을 향해서 천주교 신자들의 책임은 계속 무거운 바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은 많이 발전돼 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이 없어졌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투표로써 평화로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해 냈다. 분단된 남북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평양에서 함께 만나기도 했다.
IMF라는 경제 대란도 극복하고,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경제적 신임도가 A등급 범위에 올라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아직도 우여곡절이 많기는 하지만 여야 정당의 민주화도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시대처럼 정당의 총재가 선거 공천권을 거머쥐고 하향식 권위주의로 군림하던 모습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 일만 끝내 잘 되면 한국은 비로소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킨 나라가 될 수 있다. 실로 중요한 시대적 국면이다.
아직 부끄럽고 괴로운 양상들은 또한 상당히 남아있다. 그것은 만연한 부정부패의 잔재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통령의 아들들이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것도 지난 독재정권 시대였다면 이렇게 부정이 파헤쳐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점이 불미스러움 속에서도 발견하게 되는 보람이다.
잘못들이야 자업자득, 사필귀정의 이치와 법에 따라 엄정히 청산돼야 마땅하다.
어제 흐르던 물이 오늘이나 내일에도 계속 제자리에서 흐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모순의 현상이 있다. 그것은 이번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의 양상이다. 여야 정당이 각기 전개하는 경선전에서 상대 당 또는 상대 후보를 비판하는 논리의 문제이다.
첫째로 상대 정당을 「좌파 정권」이라고 규정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미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졌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굶고 있다. 남한이 북한보다 20배 이상 잘 산다고 한다. 이 판에 좌익을 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좌파로 모는가. 너무 낡은 위협적 발상이다. 차라리 「부패 정권」이라고 하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둘째로 「보수」다, 「원조 보수」다 하며 수구주의 경쟁을 하는 문제가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서,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로 귀양을 갔다. 그의 후계자 노태우 당대표가 6.29 선언으로 직선제 민주 개혁을 국민에게 약속했고 그대로 실시됐다.
남은 것은 민주주의 정착과 발전 뿐이다. 그런데 이제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인가. 모순과 궁색의 논리이다.
앞으로 대선을 통해 정권이 어느 당으로 가든 괜찮다. 그러나 이 나라가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고 발전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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