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환경 14
지구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미국의 테러 사건 이후로 전개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는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용서하는 것으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국의 정부와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더라도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착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행하는 용서로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대단히 힘들고 많은 손실과 위험이 따르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적에 대한 철저한 복수와 괴멸을 선택하고 있다.
작은 모기에게 물려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모기를 때려잡아 나의 피를 빨아먹은 그 모기의 보잘것없이 망가진 모습과 피를 보고 나면 분이 다소 풀린다. 뱀에게 물렸을 경우에도 대체로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물은 뱀을 때려죽이는 것이다. 처참하게 죽은 뱀의 사체를 확인하고 나면, 퉁퉁 부어오르는 손이나 발에서 오는 고통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것은 사람으로부터 입은 피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 사람에게 똑 같이 또는 그 이상으로 피해를 입히고 나면, 그 피해의 고통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래서 구약성서의 세계는 동태복수의 정당성을 얘기하고, 동양에서도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니거나 실수에 의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이 있고, 그 행위를 하고 난 뒤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어떤 형태든 배상을 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잘못한 사람을 교육하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어 나를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지 않고 동태복수만을 고집한다면, 복수는 복수를 낳아 우리의 삶이 편안할 날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용서이다.
용서는 상대편이 나에게 가한 피해를 그대로 감수해나가는 것으로서 물질적, 심리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피해가 클수록 용서는 그만큼 더 힘들다.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사람을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그대로 용서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다가온다. 그냥 용서하고 말면 나의 마음이 고통에 짓눌려 병들어갈 것만 같다. 그래서 실컷 욕을 해주던가 피해를 입은 만큼 피해를 입히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만 같다. 종교인이나 선량한 사람들은 쉽게 용서를 말하지만,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용서는 자아가 분명하고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수를 할 능력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니다. 그것은 기회가 오면 복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용서는 그러한 피해를 입고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갈 수 있는 대단히 성숙하고 수련된 사람이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존재를 예수님 안에서 본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린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당신을 십자가에 처형하던 사람들을 용서하셨다. 이것은 보통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내맡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힘든 것이기에 용서가 낳는 열매는 생명을 살린다.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도 생명을 가져온다. 용서의 열매가 얼마나 달고 훌륭한가는 용서해본 사람만이 안다. 복수가 낳는 시원함은 용서가 불러일으키는 생명에 비교대상도 되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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