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모님이 우리곁을 떠나 주님께로 가신지가 벌써 1년 반이나 되었습니다. 떠나시기전 혹여 세례를 못받고 주님이 부르실까봐 노심초사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눈물로 회개하시는 안셀모님을 사랑하시고 가엾이 여기시어 다행스럽게도 영세를 받으실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셨습니다.
말기 간암으로 복수가 배에 가득차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그 고통을 괴로워하지 않고 평화 속에서 주님께 가게되는 것을 너무나 감사해하던 그 모습속에서 저는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안셀모님이 울면서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엄마도 없는 어린 외아들을 회초리를 때려가며 억지로 떼어 외가에 맡겨두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노임을 지급하지 않는 공사업주를 살인하여 10여년의 복역을 마치고 보호신청을 하러 저에게로 처음 오셨을 때에는 좌절감과 희망이 함께 교차하여 존재하는 것을 안셀모님의 눈가에서 보았습니다.
그래도 IMF라는 모든 사람이 힘들게 터널을 통과하는 시기에 한국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에서 1년만에 1000여만원을 모아 퇴소하여 방을 얻고 새로운 출발을 하던 희망에 가득찬 모습이 불과 몇 달 후 간암선고를 받고 다시 절망의 순간으로 변했을 때에도 안셀모님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저에게 중요한 몇가지 부탁을 해오셨지요. 돌아가시기 전 세례를 받도록 도와 달라는 것과, 오래 전 외가를 떠나 어디론가 행방이 묘연한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을 찾도록 도와달라는 것과 10년 전 사건의 피해자 가족에게 사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이었지요.
앞의 두 가지는 제가 성모병원에서 수녀님께 부탁하여 세례를 받으실 수 있도록 하고 주민조회는 검찰에 부탁하고 하여 도와드릴 수 있었지만 마지막 세 번째는 결국 찾을 수 가 없어 도와드리지 못하고 마지막 방법으로 안셀모님이 가진 모든 재산과 몸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재산은 동사무소를 통하여 어린 소녀가장들에게 환원될 수 있었지만 장기기증은 안타깝게도 암세포의 위험성 때문에 기증되지 못하고 의학실험을 위한 사체기증만 하게 되었습니다.
안셀모님이 주님께로 떠난 후 저는 아드님을 다시 한번 만났습니다. 아드님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서운한 감정은 지금은 하나도 없다고요. 그리고 그렇게 평화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또 자신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채줄거라고요.
제가 못 이루어드린 안셀모님의 소망과 부탁을 가슴아파하며 안셀모님의 영혼의 평안을 주님께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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