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벨기에에서도 적극적 안락사에 관한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고 한다. 지난 16일 벨기에의 하원은 2년여 동안의 오랜 토론 끝에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안락사 법안을 승인한 것이다. 18세 이상의 환자로 제한하면서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환자의 자발적이고 거듭된 요청에 따라 의사가 합법적으로 죽음을 시술해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안락사 합법화가 이제 미국, 유럽사회를 거치면서 서서히 그 영역을 전세계로 넓히고 있다는 데에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생명윤리의 원리들 중에서 자율성 존중의 원리가 마치 모든 판단 기준의 절대적 기초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이제 환자 자신이 스스로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까지도 이 원리 때문에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고통스런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목숨을 끊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는 의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자율성 존중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생명경시현상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어떤 설문에 의하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안락사를 합법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무려 80%까지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자유가 다른 인간들과 고립되어 타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 세속의 개념에서 성장한 자율성의 개념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율성 존중의 원리 등 생명윤리학의 원리들이 정의하거나 함축하는 바는 대부분 종교분야와는 무관한 임마누엘 칸트나 죤 스튜어트 밀 등의 철학자들의 사상에서 차용한 것들로서 여기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주로 환자 간호나 치료, 연구에서 마주치는 딜레마에 관한 것이며, 기껏해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정도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또는 인간의 삶에서 다른 삶과 구분되는 것은 어떤 것이며, 나아가 어떤 것이 진정 인간을 위한 참된 가치인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이 자율성 존중의 문제에 있어서도 철저한 고립 속에서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식의 자기몰입에 빠져 있는 환자 개인의 인간 이해는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와는 전적으로 상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또 다른 근본적인 그리스도적 신념, 즉 인간의 삶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위반되는 자율성의 해석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서적 전통은 혼자서 혹은 자신을 위해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함께, 인간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일종의 소유물이 아니라 선물이고 신뢰인 것이다.
나의 육체는 내 존재의 자리이자 조건이라는 점에서 내 자신의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오로 사도가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1고린 6, 19~20)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정신은 모두가 온전히 그것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의 말씀을 가슴깊이 간직하자.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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