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되어 돌아가는 데 대해 무어라고 말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이다.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은 이치를 판단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세상 일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한심하기 때문이다.
이 세속을 살아가노라면 날마다 텔레비전 뉴스도 듣고 신문도 보게 마련이 아닌가. 그런데 그 내용이 거의 전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언짢아지게 하고 괴롭게 한다.
이것은 피하기 어렵게 타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런 것을 이 나라의 정치 현실이라고 해야하나. 정치란 다른 것이 아니다.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국민 각자가 책임을 분담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함께 의논하고 노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며 분신인 만큼, 정치권력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또한 정치권력의 운영 결과를 하느님에게 되돌려 보내야한다. 이것이 정치에 대한 교회의 개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신자인 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의 아들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거액의 돈을 만들었고 그 죄 때문에 구속이 된다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것은 먼저 정권 때도 그랬고 지금 정권 때도 그렇다. 잘못을 되풀이하는 지금의 단계가 더욱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이 정권이 어떻게 해서 얻은 정권인가. 수많은 국민,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고 감옥살이를 하면서 얻어낸 정권이다. 이른바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평화적인 선거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해낸 일이었다.
그런데 이 뜻깊은 정권에다 누가 감히 먹칠을 하는가, 오물을 뒤집어씌우는가. 이렇게 되면 이 나라 민주주의의 정통성은 어디에서 찾아야하며 가치관의 중심은 어디에서 찾아야하는가.
물론 한번 수평적 정권교체를 시작했으니 현정권이 일을 잘못하면 다시 다른 정권으로 교체하면 된다. 다음 정권도 일을 잘못한다면 또 바꾸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교체되는 행태 자체는 떳떳해야 한다. 여야 정당들이 나라에 대해 봉사할 기회를 교대하는 일이 나날이 이전투구로써 국민을 괴롭혀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느 원로들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이 보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정의로운 현실담당 세력의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은 있어도 육체가 따르지 못하는 불구의 시대인가. 이러한 때엔 말을 하기도 힘들고 기도나 하게되는 것 같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의 산상수훈을 읽어야 할 심경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렇게 좀 행복해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현실 활동에서 사람들이 이제는 방법 자체를 달리해야 할 것 같다.
야당이 거칠게 비판할 때 여당이 「너는 깨끗하냐」고 되받아 치기만 한다면 이것은 대안 없는 양비론이 되고 이전투구의 연속이 되지 않을까. 온유한 방법, 부드러운 물이 굳어진 것을 녹이는 데에 가장 힘있는 것이 된다.
왜 부정한 돈이 문제가 되는가. 마음이 가난한 이, 청빈한 구도자가 되어 대응하면 어떨까. 체코의 하벨은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고 한다. 대통령 퇴임 후의 생활을 사람들이 염려하면 하벨은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원래 극작가이니까 원고료를 받아서 살겠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고생만 한 우리나라 대통령도 언제 돈을 벌 기회는 없었지 않은가. 굳이 어떤 데에 큰 집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아들이 큰 돈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어차피 인간 존재들은 형이상학적 소외자들이다. 공정하게 생명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에게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 되돌려 지는 것이 이치이다.
우리가 일상에 느끼는 언짢을 일들, 불행한 일들은 우선 「내 탓」이라고 생각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도 될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기 이전에 먼저 남한에서 동서가 반드시 화해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나날이 짜증스럽고 답답하다 하더라도, 미래는 가치관에 의해 발전하는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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